7.서른, 축구하기로 결심하다.

희미한 데뷔전.

by 이축구

어느새 2학년이 되었다. 1학년으로 들어온 축구부 07학번은 실력과 의욕이 넘치는 친구들이었다. 재밌는 축구부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다만, 불안한 요소가 있었다. 바로 윗 학번인 05학번 선배 몇몇 이었다.


05학번 축구부 선배들이 3학년이 되면, 그야말로 축구부의 주축이 되는데 05학번 선배들 일부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04학번 선배들과 03학번 선배들은 조금 거칠어도 인간다운 면이 더 많았기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겨도 금방 풀어낼 수 있었고, 남자다운 멋스러움 또한 있었기에 지금도 좋아하는 형 동생으로 잘 지낸다. (얼마전에도 04학번 주장이었던 박동형 형님 집에 놀러가 술을 얻어먹었고, 03학번 에이스 김환기 형님과 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불안함은 현실이 되었고, 예상보다 더 끔찍한 축구부 생활을 했다. 1학년때보다 머리를 더 자주박았고, 1학년들 앞에서 크게 망신을 주는 일도 더러 있었다. 또한 축구부 부비가 모자란다는 명목하에 1,2학년들이 돌아가며 학교근로 및 아르바이트를 했다. 물론, 한 푼도 못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부 운동이 즐거울리 없었다.


악습은 계속되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던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축구부 주장' 이 되려면 그래야 했다. 물론 그러함에도 난 리더가 될 자질이 부족했다. 축구부에서 요하는 리더는 더 남자다워야했고, 더 강해야 했다. 축구는 좀 하지만, 뭔가 아쉬운 아웃사이더로 분류 되는듯 했다.


제주도에서 열린 춘계대학연맹전에 참가했다. 2학년이 되었으니, 실력과 관계없이 기회는 부여받았다. 다만, 전혀 즐거운 축구를 하지 못했다. 그냥 뛰라는대로, 선배가 하라는대로 의미없이 뛰어다니는 축구를 했다. 단 몇분이라도 그리고 실수를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해서 움직이는 축구를 하고싶었다.


물론 실력 격차는 어마어마했기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뛰더라도 그런 판단을 하면서 축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가지고 있었다.


2학년 대회는 그렇게 의문남 남긴채 끝이났다.


어찌 되었든, 대학 정식대회를 뛴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대회가 끝나고 학교를 다닐 재미를 찾다가 학교에서 상당한 부분의 비용을 제공하는 미국 어학연수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미시간 주립대학교로 3개월간 어학연수를 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지원해봤다.



꽤나 경쟁이 치열했는데, 열심히 쓴 자기소개서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나대는' 성격덕에 영어면접을 잘 봐 뽑히게 되었다. 합격소식을 들은 부모님께서도 응당 들어가는 비용을 대주시겠다 하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축구부에 가로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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