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서른, 축구하기로 결심하다.

한국교원대학교 축구부 주장이 되다.

by 이축구

미국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축구부 여름방학 합숙과 날짜가 부분 겹쳐 버린 것이다.


일단 축구부 주장이 되려면, 암묵적으로 3학년이 되기전까지 축구부의 '굵직'한 행사에 빠지거나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연히 후에 주장이되어 축구부를 이끌어 갈 때 분명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잠시 갈등했지만, 아예 통으로 참여하지 않는게 아니기도 하고 이런 좋은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허락을 구했다.


'니가 거기가서 뭐할건데?'


그래도 이정도는 이해해주겠지 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상당히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이러나 저러나 나는 가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뜻을 굽히지 않고 꽤 긴시간 설득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미국이란 큰 세상을 보고 돌아왔다.


미국에서도 다른것보다 결국 '축구'만 많이 하고 돌아왔다. 유학을 온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거의 매일 공을 찼는데, 독일에서 온 친구랑 라이벌관계가 되어 매우 치열하게 찼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날, 바로 축구부 합숙에 참여했고

2학년 축구부 생활은 그렇게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차기 주장을 뽑는 시기가 왔다. 나는 욕심은 났지만, 그래도 희망은 내려놨다. 나는 축구부가 원하는 만큼 멘탈이 강하지도, 남자답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은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게 축구부에서 주장을 할 수 있는 표면적 요건들을 갖춘게 어떻게 하다보니 동기 5명중 나 뿐인 것이다.


나를 포함한 축구부 동기 5명중 1명은 군휴학 예정이었고 또다른 1명은 과전체를 통솔하는 더 중요한 다른 직책을 맡고 있었기에 제외되었다. 또 나머지 2명중 한명은 1학년 합숙을 아예 통으로 참여하지 못했기에 제외되었고 나머지 1명은 삼수를 해 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에 약간 껄끄러운듯 했다.(보통 이런 자리에 삼수생 이상을 앉히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후보는 나와 삼수생 동기 정도 였다.


05학번은 그 삼수생 동기에게 먼저 주장을 제안했다고 알고있다. 다만 그 동기가 완강히 그 직책을 거부하면서 주장 직책 후보가 나로 좁혀져 버린것이다.


사실 나를 주장으로 선임하는데에 선배들의엄청난 반대가 있었던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때 당시 동기들과 07학번 후배들이 지지해주며 결국 주장으로 선출되었다.


(그중 동기 '06학번 박종문'은 성격대로 묵묵히 그리고 뚝심있게 끝까지 나를 지켜주고 지지해 주었다. 여전히 고마움을 느끼고 아직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의욕적으로 주장이 되었다. 내가 생각한 축구를 실현하리라 마음먹었다.


다행히, 축구부 주장의 의견은 아무리 선배라 할지라도 꺾으면 안된다. 라는 불문율 아닌 불문율이 있어 주장이 된 뒤에는 선배들의 반대에도 내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선배들의 우려와 걱정 까지도 내 고집으로 꺾어 지금생각해보면 죄송한 마음이 크다. 04학번 이승철 형님 사랑합니다.)


다만 당시에는 내 주관대로 팀을 이끌어볼 수 있는 기회가 덜컥 주어지니 해보고자 했던것을 내 고집대로만 실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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