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서른, 축구하기로 결심하다.

서울 사람.

by 이축구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스무해 짧은 인생에서 서울 밖은 여행하는 곳이지 머무는 곳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서울 촌놈' 이었다. 한국은 서울이고 서울이 곧 한국인줄로만 알았다.

서울부심 같은건 없었지만, 서울밖 세상은 처음이었다.


참 많이 달랐다.


'군중속의 고독'이 가득한 서울은 내가 무얼 하든 주변에서 별 신경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괴로울 수 있고 외로울 수 있는 '군중속의 고독'이 나에게는 '필요한 외로움'이었다.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고 체대 문화를 처음 겪으니,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과격한 쓸데없음' '이상한 집단주의'가 '필요악'으로 포장되어 답습되고 있었다. (이런 경험덕에 동기들과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끈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라는 말이있다. 10년 넘게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해볼만한 경험이었지만, 당시로 돌아가 두번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웃고 다닌다고 머리를 박았고, 동기들중 하나가 슬리퍼를 신고 1층에서 담배를 폈다고 단체로 머리를 박았다. 연락을 돌리는데 선배보다 먼저 끊었다고 또 머리를 박았다. 이 외에도 지금도 그때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들로 어둠속에서 머리를 박았다.

위 사진은 본 글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런 문화가 가장 크고 웅장했던 곳이 축구부였다. 나는 축구가 그 어떤 스포츠보다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매번 다른 순간, 매번 다른 상황에서 매번 다른 선택들로 경기가 이어져 나간다.


'축구 경기 시작전, 흰 도화지가 준비된다. 경기가 시작되면 양 팀 22명의 선수들이 각자의 색깔로 감독이라는 화가가 경기장에 그림을 그려 나간다. 그 그림은 90분이 지나 휘슬을 불면 완성이 되고 매 경기마다 다른 작품들이 탄생한다.'


이런 나의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축구를 하는 곳이 축구부였다. 공없이 체력운동을 하고, 경기중에 공이 나가기라도 하면 누군가가 공을 잡기 전까지 1학년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있든 상관없이 공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정강이로 패스를 해놓고 선배라는 이유로 오히려 윽박을 질렀다. 왼발을 써야할 타이밍에 오른발 아웃프런트 킥을 했다고 건방지다고 욕을 먹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축구, 사랑하는 축구가 아니다.


다른건 다 버틸수 있어도 '축구'만큼은 이렇게 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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