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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중 Oct 04. 2021

아버지와 나, 그리고 아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갑자기 아빠가 위암으로 입원하셨다. 어느 날 아침 엄마는 어두운 얼굴로 내게 집을 부탁하고는 병간호하러 가서 쉬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수술이 끝났으니 동생들과 함께 병원에 오라는 전화를 받고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며 시내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아빠는 많이 야위었지만 수술이 잘된 덕분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린 동생들 데리고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던 내게 아빠는 “저 자식은 아비가 아픈데 콧노래나 부르고 있어” 라며 차갑게 말했다. 


창가로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던 아빠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싸늘해서 나는 그만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의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보다는 아픈 아버지 앞에서 노래나 부르는 철부지 자식이라는 무안함이 얼굴을 더 붉게 물들게 했다. 작은 뿌듯함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 노래가 새어 나온 것이라고 오해를 풀고 싶어도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퇴원과 더불어 우리 가족은 곧 이전의 생활로 되돌아갔지만 아빠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하나 생겨서 예전처럼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아빠라는 호칭 대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즈음이었으며 때마침 시작된 사춘기가 부자간의 대화를 더욱 줄어들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말을 할 때면 혹시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지 먼저 눈치부터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배려 아닌 배려가 지나칠 때에는 주위로부터 '예민한 건지 민감한 건지, 참 피곤하게 산다'라는 빈정거림까지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대화에 자신이 없어지며 관계 형성에 서툰 어른이 되어갔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닮아 가는걸까? 당신이 살았던 인생의 궤적을 따라 가듯 40년 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같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요즘 위암은 암도 아니니 병문안 오지 말라고 일러두고는 조용히 입원실 침대에서 예전 아버지의 병실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내가 어떤 노래를 불렀었는지 좀처럼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지쳐있는 환자 앞에서 휘파람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나는 정작 그 노래는 기억해내려 하지 않으면서 그날의 아버지만 원망하며 기억의 굴레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인과관계의 순서를  되짚듯 잠시 아버지의 아버지를 그려본다. 나와 달리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함께 하지 못했기에 아버지로서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닐지.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아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이 더욱 어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는 당시의 아버지처럼 중년이 되었고 내 아들은 그때의 나처럼 사춘기 소년이 되었다. 이제 팔순을 넘은 아버지는 서운한 것이 있어도 말씀을 굳이 밖으로 꺼내지 않고 안으로 삼키곤 하신다. 그런 아버지를 거울삼아 나도 중3 아들에게 말을 건넬 때면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신중히 고르려 하지만 녀석에겐  작은 관심조차  지나친 간섭으로 비칠 뿐이다. 


갈수록 말수가 줄어가는 아버지에게서 나의 노년을 바라보고 무뚝뚝한 아들에게서는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요즘이다툭툭 내뱉는 자식의 한마디보다 어린 시절 아이가 부르던 요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되는 걸 보면 말이란 참 어려운 관계 맺기 방식인 것 같다. 특히 부자간에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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