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중 Dec 31. 2021

 300

달리기 선수는 정지해 있는데 거꾸로 무대 배경이 움직여서 결승 테이프를 끊게 되는 슬랩스틱 연극처럼 세밑이 저절로 찾아왔다. 열심히 달려 결승점에 도착하지 않고 편승한 버스에서 잠들었나 싶었는데 어느새 막다른 종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이렇게

손님 일어나세요, 이제 막차 운행 끝났습니다. 
여기가 어디죠?  전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요...
환승을 하든, 걸어 가든  이제 제 알바 아닙니다. 일단 여기서 내려주시죠 


어릴 적,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은하철도 999호가 어느 날 갑자기 종영되었듯, 버스 2021호의 운행도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오늘로서 종료되는 것이다. 낯선 사막 한가운데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새로 나갈 길을 찾을 수밖에...  


생각해보니 인생은 종합 육상경기와도 같다. 100미터만 전력질주하면 편히 쉴 줄 알았는데 인생의 트랙에는 800미터, 5000미터, 10000미터 같은 장거리 경주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 정해진 트랙만 달리면 될 줄 알았는데 인생의 길 곳곳에는 허들이 버티고 있었고 내 키보다 더 높은 장애물도 뛰어넘어야만 한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도움닫기를 이용한다면 예상보다 훨씬  더 먼 멀리 뛰기를 할 수 있다. 올해  나의 도움닫기는 릴레이 계주의 바턴 방식과도 같았다. 올봄, 우연히 클럽 하우스의 모닝 글쓰기에 참여하여 글쓰기 근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00일간의 글쓰기가 리추얼이 되어갈 무렵, 간헐적 단식을 체험해보고 그 이후 다이어트 밴드의 100일 인증하기를 통해 10kg를 감량할 수 있었다. 마치 릴레이처럼 100일의 도전이 끝나면 다음 도전으로 바턴을 넘겨주듯이  12월에는 100일 출석 수강료 환급 인강을 통해 일본어 N2 시험도 치렀다.


파파고 시대에 일본어가 무슨 소용일까? 갑자기 뺀 살은 요요도 쉽게 오는 게 아닐까? 글 쓴다고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괜한 시간낭비는 아닐까?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런 걱정과 우려가 매번 첫발을 내딛는 것을 방해해 왔기에 올해는 아무 생각 없이 일단 발걸음부터 무작정 떼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글쓰기 100일의 나비효과가 다이어트 100일, 일본어 100일의 파도타기를 통해 300일이 되었다. 


매년 새해 아침에는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버킷리스트도 만들어보지만 늘 작심삼일로 끝나버린다. 나와 같은 의지박약자에게는 내년이라고 해서 크게 달리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강제성이 있는 도약대를 이용하면 평소보다 더 멀리 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올해의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계속 작심삼일을 이어가다 보면 100일, 200일, 300일, 1년 365일이 되지 않을까? 


육상경기의 꽃은 마라톤. 이제 몇시간이면 2022년의 해가 떠오른다. 먼 길 떠나는 사람처럼 긴 호흡으로 하루를 시작하다보면 내년 세밑에는 무임승차가 아닌 두다리로 결승 테이프를 끊게 될지도 모른다.


 


               니노 막시무스 스카이저 소제 쏘냐도르 난 죽지 않아 스파르타 300 하!하!   

   

작가의 이전글 라 돌체 비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