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나의 집은 어디인가?
저녁을 늦게 먹은 탓인지 속이 불편해서 한밤중에 집을 나와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 하는 중이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인적도 드문데 저 멀리 커다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뭐지?"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보니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갈지자 행보를 하면서도 용케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스르르 나아가는 뒷모습이 마치 공중부양을 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환한 가로등 밑에서 드러난 그 정체는 나오지도 않는 오바이트 때문에 기둥을 붙잡고 고군분투 중인 한 취객이었다.
무지로 인한 공포는 대상이 확인되자 이내 동정으로 바뀌어서 동병상련이 되었다.
' 쯧쯧... 내가 저 심정 알지, 세상은 빙빙 도는데 오바이트도 안 나오니 얼마나 괴로울까? '
도와주고 싶지만 요즘 세상에 섣부른 선의를 베풀었다가 서로 난처한 일을 당하는 뉴스가 비일비재하니 선뜻 나서지도 못하겠다. 게다가 '저 정도면 뭐 큰일도 없겠다' 싶어 이제는 고개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를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며 단지 안을 돌고 있는데, 헉 ..너무 놀란 나머지 안 밴 애 떨어지는 줄 알았다.
시간상으로 이미 집에 있어야 할 그가 여전히 휘적휘적 걸으며, 이번에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아까 그곳과 지금 이곳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리가 아닌데 어떻게 여고괴담급 순간 이동을 한 걸까?
신출귀몰이 아니라면, 내가 빠른 걸음으로 가장자리를 따라 원형으로 넓게 도는 동안, 방향감각을 상실한 그는 자기 아파트를 찾아 동과 동 사이를 통과하여 나와 다시 마주친 것이 과학적인 추론일 것이다.
에구 ~ 아직도 집을 못 찾았다면 그냥 집에 전화 걸어 데리러 오라고 하는 게 빠르겠다.
하긴... 그 정도의 사고 회로가 작동한다면 다 큰 어른이 자기 집을 잃어버리지도 않았겠지.
폭음이 얼마나 큰 죄인지는 모르겠으나, 미노타우루스처럼 영원히 미로 속을 헤매야 하는 형벌이라면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아저씨, 집이 몇 동이에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다른 존재는 안중에 없는 듯, 그는 긴 외투 자락을 휘날리며 예의 그 공중부양 보법으로 스르르 내 곁을 스쳐갈 뿐이다. 입으로는 연신 뭔가를 구시렁 구시렁 대면서.....
(아마 꽁꽁 숨어있는 자신의 집을 향한 저주 인지도 모른다 )
그렇게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자니 , 물론 이 상황에 적절치는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옛날 어떤 선언문의 첫 문장이 오버랩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 하나의 유령이 아파트 단지 안을 배회하고 있다. 취객이라는 유령이.....
다음날 아침, 혹시 밤새 계속 뺑뺑이 도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는데 별일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대단할진저!!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귀소본능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