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찾은 잠실 롯데 타워. 123층의 위용을 과시하듯 탑 중간중간에서 불꽃들이 포물선 그리며 떨어지는 방식은 기존에 내가 알던 하늘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 장면이 마치 에일리언 영화 속 커다란 유충이 좌우로 전자파를 내뿜듯한 조금 기묘한 느낌이다. 그런 이질감이 자연스럽게 나의 첫 불꽃놀이의 추억을 소환해 주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마지막 여름방학, 단기 연수를 핑계 삼아 찾은 일본에서 처음 하나비를 접하게 되었다. 마쯔리의 등불, 유카타의 긴 행렬, 고베 항구의 바다 내음. 이국적인 풍광의 조합속에서 축제는 시작되었고 형형색색의 불꽃들을 수놓은 황홀한 밤하늘을 취한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어는 순간, 왠일인지 서글픈 생각이 마음 끝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하나둘씩 검은 바닷속으로 명멸하는 불꽃들처럼 언젠가는 내 청춘도 곧 소멸하겠구나'라는 상실감이었다. 누군가 '이봐, 인생은 저 불꽃놀이처럼 이내 사라지는 놀이같은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밤새 떠나지 않던 축제의 밤이 끝난 다음날 아침, 이렇게 일기장에 끄적거렸었다.
'볼꽃놀이가 찬란한 것은 그것이 찰나이기 때문이며, 찰나라서 더욱 처연하다'
치기어린 시절의 낯 뜨거운 문장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 그토록 즐거운 축제 속에서 왜 애늙은이 같은 상념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아마도 당시 즐겨듣던 '카니발의 아침'의 애잔한 선율이 오버랩된 탓도 있겠지만 불꽃놀이의 화려함이 내게는 쓸쓸함과 비장함으로 전이되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다음 날 아침, 이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그 '무엇'에 공허해진 것이 아니었다면 연극이 끝난 후 무대에서 텅 빈 객석을 마주하는 허무함이었을지도...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내 앞에 놓인 숫자뿐이었다. '서른, 이제 잔치는 끝났다'의 시처럼 그때 나는 이제 현실을 직면해야 할 서른 즈음의 나이였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내 나이만큼의 많은 불꽃놀이를 접해 본 지금은 예전 그 불꽃놀이의 서늘하고 아련했던 감각은 이제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불꽃들을 바라보면서도 머리로는 이 불꽃놀이쇼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어느 정도일지를 따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니 말이다.
행사장 속 다른 사람들은 볼꽃이 터질 때마다 환호와 탄성도 지르고 박수도 치는데 아무런 감동도 느낄 수가 없다. '불꽃도 찰나고 인생도 찰나'라고 썼던 그날의 일기가 무색하게도 지난 20년의 시간동안 나야말로 참 많이 변했나 보다.
행사의 막바지에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인파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번잡한 세상사 피로감이 회한과 함께 밀려온다. 한참동안 높은 타워를 쳐다본 탓인지 현기증 때문에 하늘과 지상의 경계마저 혼란스럽기만 하다.
순간 떨어지는 불꽃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저 불꽃 세례속에 몸을 내려놓으면 방전된 내 인생이 재충전 되리라는 헛된 바램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