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음식이 갑자기 먹고 싶어 진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 기억속에서는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 요즘 자꾸 입맛을 당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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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방학마다 나를 맡아주었던 외할머니의 집은 사방이 옥수수 밭으로 둘러싸인 시골이었다. 여름이면 삶아주시던 옥수수는 어릴 적에는 맛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차츰 물리게 되었다. 나도 이제 곧 중학생이 될 나이인데 여전히 좋아하는 줄 아시는 외할머니는 온종일 굽은 등으로 옥수수 껍질을 벗겨내어 한 솥 가득 삶곤 하셨다. 그런 수고 치고는 길에서 파는 달짝지근한 옥수수에 비해 순 맹탕인 외할머니 옥수수는 그저 밍밍할 뿐이었다.
게다가 며칠 지난 옥수수에서는 쉰내가 났다. 다 먹고 난 옥수수 속대는 뼈만 앙상한 외할머니 같아서 왠지 보기 싫었다. 복숭아나 자두 같이 예쁘고 맛있는 과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째서 외할머니는 옥수수밖에 모르는 건지 답답했다. 방학이 빨리 끝나 서울 친구들과 떡볶이 같은 걸 먹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나에겐 외할머니의 옥수수는 수수하다 못해 시시한 음식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다채로운 음식에 길들여졌던 탓일까? 2년 전 여름, 갑작스런 가슴 통증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거쳐 결국 심장수술을 받게 되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병상에 누워 나이 많은 환자들의 죽 먹는 모습을 보노라니 '노르웨이의 숲'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소설 속 미도리의 아버지는 병문안 온 딸의 남자 친구가 병실에서 오이를 아작아작 씹어먹는 모습을 보며 자기에게도 한 입 달라고 한다. 늙고 병든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 오이였다면 나는 혹시 무엇을 먹게 될까 궁금했다. 그런데 퇴원 후 제일 먼저 사 먹게 된 음식이 바로 옥수수였다.
슬슬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산책 삼아 고3딸을 기다리다 우연히 학교 앞 작은 트럭에서 삶은 옥수수를 파는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등하교 시키느라 수차례 오가면서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옥수수 3천 원'이란 삐뚤빼뚤한 글씨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찜통 같은 더위에 물기없이 메마른 그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니 옛날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요즘 학생들 몇명이나 사 먹는다고 학교 앞에서 옥수수를 파는 걸까?' 나도 모르게 답답한 한숨이 나왔다.
웬 옥수수냐고 묻는 아내에게 딸내미 학교 앞에서 샀다고 하니 바로 알은체를 한다. "날도 더운데 그 할아버지 아침부터 애들 야자 끝날 때까지 하루 종일 자리 지키시더라고, 몸도 안 좋아 보이던데"라며 걱정을 한다. 그 말을 들으니 한 봉지에 3천원 밖에 안 하던데, 이왕이면 두어 봉지 더 살걸 그랬나 아쉬워했던 것이 벌써 재작년의 일이다.
올여름, 옥수수 철이 돌아오자 이젠 딸도 졸업하고 없는 학교 앞으로 찾아가 보았지만 늘 있던 자리에 그 봉고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시장에서 장을 본다는 게 그만 생옥수수를 한 마대나 사고 말았다. 아내는 "에구, 이 더위에 저 많은 걸 언제 다 삶누" 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날 퇴근하니 김이 모락모락나는 옥수수 한 접시를 쑥 내밀었다. 퉁명스럽게 "요즘 부쩍 웬 옥수수 타령이래" 라며 입도 같이 쑥 내밀긴 했지만..
옥수수 한 접시를 다 비우고 나서 이빨 빠진 옥수수를 바라보며 다짐해본다. 나중에 이 여자가 호호 할멈이 되더라도 곁에 착 달라붙어 있어야겠다고. 가늘고 질긴 저 옥수수 수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