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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Oct 20. 2021

너의 맥락 위를 걸어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를 봤다. 빈센트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 생전 그의 삶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보는 영화였다.


한 사람의 삶이란 참 분명히 저기 있고 바라볼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하늘 같다(영화 중 고흐의 편지를 배달해 주던 우체부 아저씨의 말을 인용)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데 타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고흐를 두고 상반된 이야기들을 하는 그의 주변 사람들을 보며 결국 모두는 모두에게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 각자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그 사람이 있을 뿐. 그런 점은 영화의 줄거리를 떠나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광기와 비운의 천재로 남아 있는 고흐. 그의 삶을 조금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따뜻하고 진솔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끝없이 고독했던 한 사람이었다. 타인을 위로하고 싶었던 순수한 영혼이자 영화 제목 그대로 Loving Vincent였던 고흐. 한 사람을 단어 몇 개로 표현한다는 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일인지. 나만 해도 누군가가 나의 진심을 몰라준다는 건 억장이 무너지지 않나. 내가 유독 책이나 영화, 그리고 대화를 좋아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 사람을 함축적 단어 그리고 띄엄띄엄한 장면이 아닌 그 사람이 걸어온 문맥에서 이해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 어떤 잘못을 했을지라도 그 사람의 문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라고 정말 그렇지 않을 것인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나는 나의 맥락을 알기에 나의 행동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관계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많은 이유도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 나의 앞에, 너의 뒤에 있는 문장 하나를 몰라 더 커지는 오해와 갈등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문맥 안으로 들어가 보는 방법밖에 없다. 귀찮고 어려운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내 꼬장꼬장한 마음을 내려놓고 인정하기가 싫을 뿐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Starry Starry Night> 노래가 좋아 집에 가는 길에 유심히 들어보았다. 워낙 유명한 노래라 멜로디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가사가 정말 아름다운 노래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림을 직접 그려보니 고흐 당신이 말하고자 했던 걸 이제야 진정으로 알게 되었다고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노래. 직접 붓을 들어 흰 도화지를 칠해보며 고흐의 문맥 위를 걸어 보았다는 문장이 마음에 와 콕 박힌다.


요 며칠, 멀리 떨어져 있는 내 동생이 나를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나는 반대로 동생을 이해하려고 그녀가 있는 풍경의 그림을 그려 보았을까. 내 문맥에서 내 편의대로 동생의 문맥을 짜깁기했던 건 아니었을까. 가까이 있어도 모르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멀리서 서로의 상황을 몇 마디로 표현하기엔 내가 모르는 퍼즐이 더 많을 테다. 그제야 꾹 다물고 있던 입에 힘이 빠지고, 미안하고 착잡한 마음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조금 섭섭하지만 그래도 먼저 말을 건네볼까. 동생을 옆에서 직접 지켜보며 이해할 순 없어도 그 애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으니까. 간지럽고 뻐근한 마음으로 슬며시 붓을 들어보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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