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기록을 엮다 보니 왜 그토록 무언가 이루고 싶은 마음에 비해 실제로 이룬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지 알게 되었다. 왜 스스로 뒤늦게 꽃을 피우는 late bloomer라 칭하는지도. 무언가를 활짝 피우기에 나의 20대라는 땅은 잡초와 자갈이 참 많았다. 햇볕도 잘 받고 비도 주기적으로 내리는 괜찮은 토양인데, 뭐든 잘 받아들이는 만큼 자갈도 많고 자잘한 잡초도 무성했다.
그러니 제아무리 본래 괜찮은 토양이라 하더라도 씨를 뿌리면 뭐 하나, 건강하게 자랄 길이 막혀 있는걸. 뭘 심어도 잘 자라는 본래의 토양으로 돌아가려면 잡초는 뽑고 자갈은 걸러내야 했다. 그건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닌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의 20대는 그런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꽃 한 송이를 심어도 오롯이 제 기량을 다해 피울 수 있도록 토양을 다지는 시간. 그러기 위해 나는 나랑 참 많이도 싸우고 또 화해해야 했다.
언제까지고 땅을 고르게 하는 작업만 할 수도 없을 거다. 끝내 뽑히지 않고 감수하고 안고 살아야 하는 뿌리 깊은 바위가 있을 수도 있다. 수도 없이 울고 웃으며 하나하나 만져온 나의 땅, 그 끝에 서서 뒤돌아 보니 그동안 참 애썼구나 싶다. 여전히 완벽하게 고르진 않아도 이제는 이만하면 썩 나쁘지 않다. 이제는 정말 무언가를 틔우는 일에 집중해봐도 좋지 않을까. 이 땅은 10년 후 꽃밭일까 아니면 작은 숲이 될까. 무엇이든 내가 심기 마련이겠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뜻 모를 씨앗도 소중하게 심어보려고 한다. 그때의 나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적어 가고 있을까. 무엇이 자랄지 몰라도 모든 자양분이 될 매일의 햇볕과 바람과 비를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저 늦게 피는 꽃인 줄만 알았더니 결국 늦은 건 없고 저마다 필요한 시간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어쩌면 진부 하디 진부한 결론으로 20대를 매듭짓는다. 비록 이야기를 엮기 시작하며 '이게 나야.'라고 적었던 책 제목과는 결이 조금 달라졌지만 이 또한 원래 있던 곳에서 그새 몇 걸음 더 걸어갔다는 의미겠다. 언제나 그랬듯 완벽하게 불완벽하고, 이제는 정말로 그게 조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