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onee Feb 03. 2022

코리빙 준비물 : 다가가는 마음 한 뼘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02



코리빙 하우스 입주 2주 차.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연희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코리빙 하우스에 들어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가게 될 거라 기대했으나, 이상적인 공간에 있다는 것 외에는 목적없이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는 일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제 막 열흘밖에 안 되었는데 뭐.' 조급해하지 말자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코리빙 하우스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연희를 더 외롭게 했다.



입주 초기, 제일 익숙했던 창문 앞 멍때리기 장소



낯을 가리는 연희가 먼저 공용 공간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란 쉽지 않고, 모임을 만들어 사람을 모으자니 에너지 다 쓰고 뚝딱대다 끝날 것 같고. 흥미가 가지 않는 모임에 연을 만들고자 억지로 참여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누가 먼저 우리 친해지자며 이끌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스스로 ‘어쩌라고?’라는 물음을 던지던 그때, 코리빙 하우스 내 등산 번개를 모집하는 글을 보았다. 마침 아빠와 매주 가던 주말 등산이 펑크가 났고 혼자라도 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던 타이밍이었으니, 딱 연희를 위한 모임인가 싶었다. 글을 보고는 그제야 망설임 없이 참여하고 싶다고 호스트에게 연락했다. 이상하리만치 날이 추웠던 10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연희를 포함한 세 명이 등산을 하러 가기로 했다.


연희는 첫 모임이라고 꽤 긴장한 채로 1층에서 B와 M을 만났다. 걱정했던 바와는 달리 같은 코리빙 하우스 입주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만나서 그럴까, 세 사람은 각자의 색이 뚜렷하면서도 어쩐지 결이 비슷한 사람들 같았다. 두 사람 덕에 연희는 처음 가보는 산을 가봤고,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들과 산을 탄다는 사실이 등산 내내 기분 좋게 낯설었다. 오늘 만난 사람들과 같은 집으로 돌아와 엘리베이터에서 각자의 층을 누르고 안녕-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기했다. 방으로 돌아와선 여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연희는 딱 이 정도가 적당한 혼자와 우리의 경계라고 생각했다.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찰나, 등산 번개 호스트였던 B에게 연락이 왔다. “이따 저녁에 테드가 고등어 파스타 해준다는데 같이 드실래요?”




그날 저녁 테드의 고등어 파스타. 기절할 맛이다.



테드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테드 특유의 도라에몽 손으로 능숙하게 프라이팬을 휘적휘적하더니 기가 막힌 고등어 파스타를 만들어내왔다. 코리빙 하우스 안에서 이웃과 함께 먹는 첫 식사였다. 누군가는 같이 먹으려고 챙겨뒀다며 오렌지 와인을 들고 오고, 누군가는 차를 들고 왔다. 등산부터 각자의 취향껏 음료를 들고 테이블 앞에 둘러앉은 저녁, 그 이후 연희 주변으로 이웃이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하나둘 찍히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뭐 이리 사람 만나기가 어렵냐고 푸념했던 처음이 무색해질 정도로 어느 하나 애씀 없었다. 지금은 문 앞에 몰래 스티커를 붙여두고 가는 귀여운 이웃들 사이에서 서로 의지하며, 각자의 시공간을 지켜주며 지낸다. 그때 연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열정 불쏘시개 테드의 불 피우기 한 번에 이렇게 같이 글도 쓰고 있을 거라고.



연희는 요즘 코리빙 하우스에서 사는 건 어때?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이상적으로 과장을 하고 싶지도, 실상이라며 기대를 꺾어버리고 싶지도 않다. 등산에서 시작된 점이 하나둘 점점 이어지는 걸 보며 연희가 깨달았던 한 가지가 있다. 함께 살기 위해 왔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먼저 다가가는 넉넉한 마음 한 뼘은 챙겨 오질 않았었다는 걸 말이다. 모든 관계는 쌍방이라는 저명한 진리는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연희의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코리빙 생활기도 결국 호스트 B에게 먼저 연락을 했던 그때부터였으니. 코리빙 하우스는 물에 젖어 있는 종이 같아서 점 하나를 찍고 나면 어느 곳보다 쉽게 퍼져나가기 딱 좋은 곳이다.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마음 한 뼘 만큼만 들고 온다면 또 모를 일이다. 연희가 문 앞에 몰래 스티커를 붙여두고, 테드가 고등어 파스타를 해준다고 부를지.

 



[코리빙 라이프스타일 관찰기]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나오면 우연히 마주하는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곳, 코리빙 하우스. 연희와 테드는 같은 코리빙 하우스에서 사는 이웃입니다. 두 사람의 시선으로 코리빙 하우스에서 '따로 또 함께' 살아가는 여러가지 모양새를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