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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비 Jan 19. 2020

한국은 왜 아파트에 열광하는가?

아파트에 사람 넣기



"결국 플랜팅(planting)과 플랜티드(planted) 일뿐이다. 플랜팅을 위해 구획을 나누는 선-긋기(linedrawing), 그리고 원하는 것이 플랜티드 된다. 플랜팅과 플랜티드의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열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 그 위대한 발견 : 농경


 생활을 위한 생활. 그저 수렵과 채집이 있었다. 떠돌이에게는 정착이 필요 없다. 선을 긋지 않았다. 감히 그 누가 땅 위에 선을 긋는가? 시간이 지나 그중 특별히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이가 경작의 비밀을 알아내고 정착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땅 위에 선을 그었다. 더 이상 유랑은 의미가 없었으며 그 위대한 발견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농경지로 만들 곳을 구획하고(선-긋기, line-drawing), 그 위에 농작물을 심고(planting), 심어진 농작물(planted)을 관리한다. 이 획기적인 시스템의 유지에는 두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물이었고, 하나는 물을 길어오는 물바가지였다. 관리해야 할 경작지가 늘어난 후, 물은 강으로, 물바가지는 수로로 변했다. 시작할 땅과 구획, 심는 사람, 심어져야 할 농작물, 그리고 그것을 유지할 물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농경은 발전했고, 그 방법이 견고해졌다. 그리고  농경은 새로운 성질들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더욱 복잡한 것들을 나타나도록 했다. 이는 단순히 더 맛있는 과일의 문제가 아니며, 더 살찐 소를 기르는 문제가 아니다. 농경은 강력하게 역사의 추진력을 해방시켰으며, 인류의 역사의 방향을 완전히 변형시킨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이 위대한 발견을 진심으로, 그리고 정말 영원히 체득한 것이다.        


   

2. 땅 위에 경작하기   

  

 이 위대한 인류의 발견은, 당연히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은 벼를 경작하는 것이 특히 중요했다. 벼를 재배하는 방식은 다른 작물들의 재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작할 땅 위에, 적당히 구획을 하고 씨를 뿌리면 된다. 이렇게 바로 씨를 뿌리는 재배 방식을 직파법이라고 한다. 이는 매우 일반적인 방법으로, 재배하는데 많은 물이 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벼들이 무질서하게 자라서 추후 수확을 할 때 불편하고, 원치 않는 잡초들도 무분별하게 자라나 솎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잡초를 제거하는데 드는 노동력 역시 엄청났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대안이 바로 이앙법이었다. 이앙법은 직파법처럼 씨를 직접 땅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격자로 나뉜 모판에서 벼의 싹을 먼저 키운 후(이 과정에서 불량스러운 싹들은 미리 제거된다) 미리 구획된 땅에 줄을 맞춰 심는 방식이다. 이앙법의 장점은 잘 자랄 싹들을 선별한 후, 줄을 맞춰 심기 때문에 수확량이 직파법에 비하여 두배는 족히 되었으며, 줄을 맞춰 심었기 때문에, 자라나는 잡초를 분간하기가 쉬워 혹시나 자라나는 잡초들을 빠르게 제거할 수도 있었다. 이는 잡초를 제거하는데 드는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앙법은 직파법에 비해 많은 물이 든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어떤 방식으로 경작을 할지에 대해 당파들의 논쟁도 있었다. 결국은 관리가 용이하고, 생산량이 좋은 이앙법이 선택되었고, 그 방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3. 폐허위에 경작하기     


 전통적으로 한국의 마을은 부락의 모습이었다. 민중들은 땅 위에 집을 짓고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사실 이러한 형태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비슷하다. 과거 마을 형태는 농경기술적인 측면으로 볼 때 그 모습이 흡사 씨앗을 흩뿌려두는 직파법과 상당히 흡사하다. 마을을 가로 짓는 길은 만들어진 길이 아니었으며, 사람이 다니는 곳이 곧 길이 되었다. 이런 식의 마을 형성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존속되었는데, 이 구조는 1920년 일제강점기의 시작 그리고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 전쟁이 지나간 폐허 위에는 이제 대대적인 도시계획이 필요했다.                                                                                        


 가장 달라진 특징으로 본다면, 이젠 건축이 개별적인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하나, 둘 넓은 길이 대대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보급된 서양의 건축기술들은 전통적인 마을의 형태를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즉 마을이 아닌 도시의 개념으로 변화시켰다. 주목할 점은 이제 그 형태가 이앙법과 흡사해졌다는 것이다. 미리 길을 내야 했고, 관리에 용이하게 하기 위해 논에 싹을 심듯 딱딱 줄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신식 형태는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감이 있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어떤 장려와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이 교육의 방식은, 후에 다른 나라들과 비교되는 한국만의 특징적인 주거방식의 시발점이 되었다.                                             



 4. 새로 하는 선-긋기



  한국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와 삶에 대한 허무감, 슬픔만이 남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아야 했고,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다시 시작해야 할 이유와 목적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시기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것이 계획되는데, 바로 새마을운동(new village movement)이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비극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이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새마을운동을 꼽는다. 당시의 정부는 이를 통해 어떤 도시 형태와 사회구조를 발전시키기를 원했고, 그 기초 위에서 어떤 주택 정책과 주거공간을 만들어가기를 바란 것인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어떤 동기와 이념이 필요했던 그 시기에 이 새마을운동은 그 양면 모두를 충족시킬만했다. 이 운동은 내적으로는 강한 연대감과 삶에 활력을 주었으며, 잘 격앙된 내면은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는 동력원이 되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새마을운동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소득 증대 힘써서 부자 마을 만드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굉장히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이 노래에는 과거를 버리고, 혹은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며,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실제로 그랬다. 사람들은 초가집을 부수고, 마을 길을 넓히며 새마을을 가꿨다. 이 운동은 전쟁의 상흔을 빠르게 회복하고, 경제성장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외적 성장의 긍정적인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지금 돌아보자면 이는 새로운 체계와 제도를 위한 명백한 국가적인 차원의 선-긋기 활동이었다. 위의 노래 가사도 조목조목 따져본다면 상당히 선전적인 문구들이 많으며, 당시에 뿌려졌던 선전물들은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새로운 경작을 위한 선-긋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그 위에는 무엇이 심어지게 될 것인가?



 모든 것이 지워진 종이 위에는 새로 선을 긋기가 쉬운 법이다.   


            

5. 아파트에 사람 넣기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건축 방식은 서구의 아파트였다. 정부는 아파트에 대한 대대적인 건축을 시작하였는데, 당시의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아직 생소했으며 심지어 처음에는 그러한 아파트의 모습을 우스꽝스러워했다. 사실 20세기 초 근대사회의 공동체적인 거주 환경에 대한 비전으로 제안된 아파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그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사라지고 슬럼의 대명가가 됨으로써 대부분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하지만 1970년대 한국에 도입된 고층 아파트는 불과 30년 사이에 대표적인 건축 유형으로 자리매김 했다. 도입기인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좋지 못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진 아파트에 도시 중산층이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아파트를 이상적인 거주의 기준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도대체 아파트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점차 안락한 삶의 전형이 되어버린 것인가?      


 당시의 상황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필요했던 체계와 제도를 꾸려내고, 새로운 도시계획으로 아파트를 플랜팅 했으나,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필요성과 이유가 아직 사람들에게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교묘하게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플랜티드시켰다.          


 플랜팅을 쉽게 하기 위해 택한 전략은 선전이었다. 당시의 아파트 선전물에는, 아파트가 새로운 서구식의 주거형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서구식이라는 표현은 구시대적인 것을 허물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자는 새마을운동의 선-긋기 하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단어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것이 새로움이라는 것은 설명을 할 수 있었으나, "왜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이 부족했다. 사실 어떤 형태로 살아야 함에는 답이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국가는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플랜티드 시켰다. 그 방법은 바로 단어를 통한 은근한 권유였고, 특정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꾸밈 말과 명확히 뜻을 알 수 없는 외래어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즐거운, 격조 높은, 부귀를 얻는, 현대적인, 서구식의, 우아한, 최고급의, 맨숀, 빌라, 스페이스, 뉴스타일, 에레베이터, 배드룸, 리빙룸, 마이홈...      

   

 위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여 아파트라는 주거형태에 대한 환상이 사람들에게 플랜티드 되었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저 외래어가 영문 그대로 쓰이지 않고 한글로 어색하게 쓰여 졌다는 점이다. 저 뜻을 알 수 없는, 스페이스, 뉴스타일, 맨숀 등은 사람들에게 어떤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환상이었다. 왜냐하면 아직 영어가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실제로 저 단어들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지만 놀랍게도 이 방법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고, 이제 사람들은 아파트라는 건축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아파트 안에 산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이라는 의식까지 자리 잡혔다. 이렇게 아파트는 중산층의 주거양식이 되었고, 프랑스의 줄레조는 한국의 아파트에 관한 사회지리학적 연구에서, 우리나라 아파트는 중산층을 생산하는 산업화의 기계라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는데, 이러한 고층화 된 주거형태는, 민족의 공동체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에는 건물들이 높지 않고 수평적인 구조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마을 주민들 간에 공동체성이 있었으나, 현재는 고밀도화, 고층화, 수직화 되어버렸다. 좁은 면적에, 예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지만 공동체성은 추락해버리는 기괴한 상황이 일어났다.           



6. 자동화된 경작     


 체계와 제도의 설립을 위한 선-긋기, 그것을 플랜팅 하기 위한 전략적 선전,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플랜티드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충분히 이어지고 있으며, 결국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는 정말로 아파트 공화국인데,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그렇다. 사회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진정한 시민들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이며, 주권이란 시민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향후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아파트에 사람을 넣기 위해 전략적인 선전물을 만들고, 아파트를 이미지화시키는 수고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가 완벽하게 플랜티드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앞 다투어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는 정말로 자동화된 경작 시스템이다. 구획만 지어두면 싹이 튼 농작물들이 알아서 구획 안으로 들어가 뿌리를 내린다. 심지어 아파트가 부족한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으며 새로 지어질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있다. 얼마 전 한국감정원에서 발표 한 주간 아파트 매매시장의 동향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수급동향지수는 120.3포인트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해당 지역의 수요와 공급의 상황을 0부터 200까지 점수로 나타낸 것이며, 기준치인 100보다 높으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특히 서울의 강남권은 131.0포인트를 기록하여 수요가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제는 더 이상 국가적인 차원에서 아파트를 계획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이미 대기업들에게 양도된 지 오래다. 사실 양도되었다기보다는 정부는 대기업과 끈끈한 협력관계를 형성했다고 보아야한다. 당시 국가의 건설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한국주택협회에 등록된 11개의 건설회사가 이에 해당된다. 1990년대 초반에는 20층 이상 건물을 건설하는 회사에게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메달 수여와 기술적인 보상까지 해주었다. 이로써 국가와 대기업은 갈등적인 관계보다는 협력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 후 대기업들은 너도 나도, 신식 아파트 플랜팅하기 놀이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와 함께 아파트 단지의 이름들도 더욱 난해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아파트 도입의 초창기에는 맨숀, 빌라, 마이홈 정도만으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지만,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영어는 더 이상 환상을 심어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 난해한 단어들을 들고 아파트에서의 삶을 이미지화한다. 여기서 난해하다는 의미는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외래어일 뿐이다. 새로운 단어들을 찾아다니던 전략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는 메르디앙, 리첸시아, 자이, 타워팰리스 등 이 외에도 수 없이 많다.


 사람들은 이 심어진 환상을 체험하기 위해서, 진정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교육된 안정감속에 자신을 놓기 위해서 아파트로 들어간다. 그리고 더 높은 브랜드는 곧 자신의 삶의 가치를 대변해줄 수 있기에 더욱 더 높고, 고급스러운 아파트에 오르려한다. 이는 마치 과거에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직급을 나누고 계급화, 수직화 시키는 전략과 매우 흡사한 구조를 띤다. 지위의 추구(In pursuit of status)라는 저서에서, 저자인 데니스 포으체바 렛은 현대 한국 중간계급의 전형적인 모습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음을 언급한다. 하나는 서울의 강남에서 사는 것 또 하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것이다.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면, 과연 사다리 하나면 충분했다.         


      

7. 농경사회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산업화 초기에는 수도를 중심으로 발전이 집중되어 일어나며, 사람들은 대도시로 몰려들게 된다. 그곳에는 상대적으로 첨단 산업군의 직종이 몰려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농업은 지방에 퍼져있게 된다. 그래서 농경의 풍경은 지방으로만 내려가야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선-긋기, 플랜팅, 플랜티드로 이루어지는 농경 시스템은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심느냐 그리고 그것을 위해 약간의 사상을 플랜티드시켜야 한다는 점 뿐이다.    

 

 플랜팅 할 체계와 제도를 계획하고, 적당한 선전을 이용해서 그것들을 플랜티드시킨다. 이는 과거 구획을 나누고, 모판에서 미리 싹을 틔우고 열 맞춰 심는 이앙법과 놀랍게도 흡사한 구조이다. 결국 한국의 아파트 시스템은 농경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지방에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농경의 풍경은, 사실 사회 전반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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