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깨달은 것

by 오씨네


네비에 주소를 찍고 시동을 켠 뒤 블루투스를 연결한다. '정희진의 공부' 팟캐스트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정희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늘도 꽤 먼 이 영화관에서 홀로 돌아가는 차 안에 말이 울려 퍼진다. 나는 이 길이 참 좋다. 어설피 운전하는 관광객 없는 도로도 좋고 어느새 차가워진 공기도 좋다. 무엇보다 영화가 어쨌던간에 뭔가 채웠다는 안도감이 편안했다.



'모든 사람은 아름다움 때문에 변합니다. 사람은 어떤 아름다움 때문에 변하죠.' 신호에 멈춰있던 차를 출발하다 말고 들려오는 멘트에 갑자기 마음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이런 낭만적인 생각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너무 좋겠다. 왜냐면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를 바꿨던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했다.






작년 북한 미사일 경보가 아침 새벽부터 연달아 울리던 봄날에 나는 자취방에서 커튼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쟁이 날까 봐' 혹은 '죽을까 봐' 겁이 난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내가 이런 상황일 때 연락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죽음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스타든 어디든 '우정 전시'를 하고 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연락해야 하는 절친한 친구도, 애인도 없는 게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더 보여주기를 해왔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이대로 이렇게 죽는다면 나는 아마 사랑을 모르고 죽겠구나 하는 감각은 내 몸에 깊이 인식되었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모른다는 감각. 남들 다 충분히 경험하고 느낀 걸 조금도 공감하지 못한다는 수치심 같은 것 말이다.




올해 3년간 몸담았던 업계, 정확히는 업무 포지션을 반강제로 포기하고 그만두게 되면서 엄청난 배신감과 억울함에 휩싸였다. 그간 내가 나보다 10살 어린애들한테 '언니, 말랑카우는 캔디류가 아니고 카라멜류라고 쓰셔야죠!' 같은 쿠사리를 들어가며, 동갑인 피디가 일부러 현장에서 감독님 드릴 믹스커피 타오라고 동에서 서로 뺑뺑이 돌리게 시킬 때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누구나 서러운 막내 시절 이란 건 있는 거고 이 시기도 지나간다는 생각에서였다. 늦게 이 바닥에 진입한 나로서는 인생 경험으로는 적잖이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데 현장 좀 다녀봤다고 으스대는 꼴이 좀 우습기도 했다. 솔직히는 지금 과자를 뭘 사네 어느 주유소가 몇십 원 더 싸네 이런 걸 보고하는 현장에 있는 시간이 너무너무 아깝기도 했다.


그렇지만 저 모든 허드렛일을 견딘 이유 역시, 이렇게 해야 영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 영화를 할 수 있다면.





상반기 전부와 하반기 앞 몇 달을 오로지 화병 치료와 마음 다스리기에만 시간과 돈을 썼다. 마음속으로 화도 내봤다가 용서도 했다가 미워도 해봤다가 가여워도 했다가... 잊어본 척해 봤다가 소식 들으면 다시 화가 치솟는 지난한 과정...


저 지겨운 짓거리를 8개월가량 했더니 어느 순간에는 정말로 궁금치 않아지는 순간이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회복이 시작되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또 두 달이 지난 지금,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건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를 초라하게도 안절부절못하게도 속 좁게도 만들었던 것. 어떤 노력도 무색하게 계속 실패의 경험을 쌓았던 분야가 나에게는 영화였다. 외주 영상 노동자로 살던시간 나는 모든 시간을 돈으로 환산했었다. 나는 내 시간을 뺏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그 시간에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늘 남의 발자취만 그려주고 있다는 현타를 몇 년간 쌔게 맞기도, 그 좋아하던 편집 하는게 너무너무 힘들어지기도 했다. 그런 시절들을 지나 영화를 하면서는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아름다운 영화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질투가 너무 나기도 했다. '나도 저런 작업 한번 해봤으면, 나도 저런 아름다움의 일원이 되어봤으면.' 이 맹목적인 열망은 지난 3년간 나를 많이도 무너뜨리고 변화시켰다. 그래서 지금은? 지난 사랑을 인정하니 왠지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짠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 그래도 나 이제는 누가 뭐래도 씨네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하



한동안은 '영화가 싫다', '영화인이 싫다'에 몹시 괴로워하며 울분을 삼킬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안다. 나는 영화를 싫어할 수 없다는걸. 싫어하는 척도 오래 못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사랑하니까. 너의 어떤 훌륭함과 후짐과 숭고함과 좆같음까지도 사랑해. 이 마음이 언젠가 쉬이 변하더라도, 아름다움을 사랑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나를 많이 바꾸었던 지난 3년, 그리고 그전 2년, 그리고 그전의 여러날들 나는 이 사랑의 시간을 위해 달려왔던 것이다. 지난 사랑의 어떤 순간도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2024. 10. 31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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