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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Sep 18. 2017

자기 고백

어쩌면 소설.

고백하자면, 나는 긴장 중독이다.


무언가 사건이 터질 것만 같은 팽팽한 느낌. 두 사람 사이를 잇는 관계선의 확장과 응축. 밀고 당기며 주고받는 작은 이야기들과, 갈 데 없는 시선들. 나는 긴장이 좋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을 때, 나는 긴장을 느낀다. 대체로 일방적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서로의 긴장이 공명하는 것을 느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우연을 빙자해 차츰 거리를 좁혀 나가기. 시곗바늘과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달리는 와중에, 머릿속은 이내 빙판이 갈라지는 소리로 가득 차 버린다.


몇 잔이나 마셨을까. 오늘은 유독 빨리 취한다. 말의 뒷발길질처럼 강렬한 맥주지만 그래도 고작 9도 밖에 안 되는데. 그래, 이건 다 분위기 탓일 것이다. 새벽만 되면 메신저에 밝게 들어온 초록색 “접속 중”을 찾아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SNS에 똥글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과 사고를 흐릿하게 만드는 은은한 조명과, 우리나라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와, 들릴 듯 말 듯 하는 잔잔한 음악, 왁자지껄 자기 이야기에 급급한 손님들까지. 나는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과 긴장을 즐겼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래, 다 분위기 때문이다.


우리는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들 속에 가끔은 뼈가 삐죽 튀어나온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서로의 밖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 언저리를 간지럽히면서도, 좀처럼 반응이 없는 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눈은 말도 할 줄 모르면서 마음을 열어 보인다. 어쩌면 좋을까.


한동안 대화가 뜸해졌다. 이따금 입을 열지만 내용은 대체로 우리가 서로의 침묵을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하고 싶은 말은 얼마든지 있다. 아니,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말이 있다. 네가 좋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줘.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 시간이 정신없이 달음박질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더욱 마음은 조급해진다. 한시라도 빨리 닿고 싶은데, 나는 계속해서 있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거절당할 것에 대한 공포나, 자기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 관계의 변화에 대한 공포, 알지도 못하는 내 "이미지"와 실재의 괴리에 대한 공포 등등등. 생각은 발전도 없으면서 중구난방으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 생각에 몇 개의 입이 물려있고, 또 각각의 생각에는 그만큼의 입이 물려있다. 조바심, 조바심. 척추를 타고 흐르는 조바심. 그러던 와중에-.


최초의 접촉. 불안과 갈망 사이에서 가늠질 하는 내게 먼저 손이 다가왔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도 내 손은 다른 손을 향해 매끄럽게 다가간다. 서로의 손이 닿고, 별 것 아닌 온기와 촉감 속에서 비로소 거대한 위안을 받는다. 겁쟁이는 마음을 열 줄은 알아도 다가갈 줄은 모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다른 종류의 긴장 속에서 다른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나눈다.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망상을 한다. 각자, 따로, 어떻게든 그렇게 될 것임을 서로는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달콤한 향기로부터 떨어지기는 어렵다.


자리를 옮긴다. 마음의 회가 동한다. 잠깐이지만 서로의 세계에 온전히 서로만이 남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가. 그는 나를 어둠 속으로 이끈다. 낫지 않은 걱정이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 한 구석으로 자꾸만 가라앉는다. 상대방의 체취를 맡는 동안에는 스물몇 해, 존재의 고민도 자취를 감춘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항상 신기한 느낌이다. 이 충만함. 어떤 상황 속에서도 모든 걸 잊게 만드는 이 충만함.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말이, 이런 의미인가?


그는 나를 돌아본다. 그의 눈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음을 이제 발견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는 두 눈동자.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의 손길이 나를 조금씩 먹어온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기 위해 용써보지만, 조바심으로 안달나 있는 신경들은 좀처럼 부탁을 들어줄 것 같지 않다.


인기척을 피해 그늘 속으로 자꾸만 들어간다. 이러다가 곧 사라질 것만 같다. 작은 목소리와 작은 숨소리. 그의 숨결과 입에서는 씁쓸하고 고소한 맥주 맛이 난다. 담배를 피우지 말걸. 하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풀린 시선이 내 여기저기를 더듬지만, 그 방향은 좀처럼 잡기가 힘들다. 시선의 자취를 쫓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다. 동공이 수축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눈을 감았다. 좋아해. 사랑해. 얼핏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을 내 품으로 밀어 넣는다. 작은 몸을 최대한 감싸 안으려 한다. 두 사람 분의 심장 소리가 만들어내는 엇박자 속에서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간다.


마법은 여기까지. 나는 그에게 막차 시간이 다 되었노라고 알려준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울려다 보는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 픽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천천히, 환한 거리 속으로 돌아간다. 


나는 그 사람이 그리는 미래에 내가 없음을 안다. 또한 내가 그리는 미래에도 역시 그 사람이 없음을 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한 순간 스쳐 지나가는 두 선분에 불과할 것이다. 최초의 만남을 위해 영원히 먼 곳으로 달려가는 두 선분. 


사실 이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학적인 서술은 내 기분을 조금 더 낫게 해준다. 나는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으니까. 운명적인 사랑, 천생연분. 그런 것들은 오히려 관계를 망치기 좋은 환상이다. 하나가 되려는 노력 없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누구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재발견하는 와중에 차이라는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관계는 언제든지 종말로 달려갈 것이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합리적인 겁쟁이들. 게다가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도 아니니까. 단지 한 순간의 열정을 빌어 잠시나마 마음을 다 하는 것이다. 언제든 돌아갈 일상이 저기 환한 거리 속에 있으니까, 더욱 열정적일지도 모르겠다.


손은 아직 놓지 않았지만, 대신 팽팽하고 느슨하던 긴장의 끈이 툭 하고 끊어져버린 것 같다. 나는 맥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안녕. 응, 안녕. 


참 좋다. 좋다. 좋은 거다. 택시가 쓸쓸한 도로를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지막 남은 담배를 꺼낸다. 나는 담배 피우는 사람은 싫어. 나는 키 작은 사람은 싫어. 아, 다른 것도 작으면 안 되지. 날씬한 사람이 좋아. 안 좋은 기억들이 사무치는 와중이지만, 그래, 언제나처럼 나는 이런 행운 속에서 살지 않았던가. 사랑을 하는 존재로 태어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 거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짓밟아 왔던 수많은 어제와 관계의 기억 속에서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괴물이 되었다. 안녕 오늘아, 안녕 내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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