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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Jul 27. 2017

가짜 소설 2.

일상과 소설

고물 컴퓨터와 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부팅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길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SSD*가 만연한 시대에 무슨 이야기냐고 하겠지만, 아직도 80%에 가까운 컴퓨터에는 SSD가 안 달려 있다. 한국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누구든 SSD가 들어가지 않은 컴퓨터를 써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통 한 시간 정도는 꼬박 날려버리곤 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쭉쭉 내리면서 시간도 쭉쭉 보내 버린다. 그러다 보면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날 힘이 생긴다. 오늘은 트위터 타임 라인에서 드라마를 캡처한 이미지를 봤다. 벌써부터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실망할 준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구나. 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런 멋진 표현을 진작에 생각해본 적도 없고, 아침에는 좀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저 정신을 번쩍 들게 해 줄 커피나 담배 한 개비를 간절히 원할 뿐. 요즘은 아침에 담배를 피기 때문인지 예전보다는 부팅 시간이 짧아진 느낌이다. 그래 봤자 담배는 담배. 오늘도 나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먼 미래의 오늘을 가져다 쓰고 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면 아침은 자연스럽게 거르게 된다. 이제는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일찍 일어나도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는다. 어머니는 몇 번 내가 아침을 거른다는 사실에 화를 내셨지만, 이제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신다. 어머니가 이제 신경을 쓰지 않게 된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내 잘못이다. 간섭과 걱정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것에 어머니가 지쳐버린 것은 내 신경질적인 반응이나, 제대로 독립하지 못했음에도 홀로 선 척을 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그렇게 뻗어나가자 문득 오늘은 아침이 먹고 싶어 졌다. 11시, 이미 아침이라기엔 늦었지만.


집 밖을 나서니 해가 중천이다. 언제 봐도 생경한 모습이다. 매일 같이 해를 좀처럼 만나지 않는 생활을 하다 보면, 쨍한 햇빛이 정말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아스팔트는 벌써 달아올라 퀴퀴한 냄새를 뿜고 있다. 우리 동네는 참 낡았다. 고향의 모습을 닮아서 한 때는 좋아했지만, 이제는 이것이 낙후의 증거임을 안다. 가난한 동네의 가난한 모습. 음식물 쓰레기는 아무렇게나 봉투에 담겨 버려져 있고, 개중에는 터져 있는 것도 꽤 있다. 파리가 날아다니는 소리가 시끄럽고, 익숙한 음식물 쓰레기 썩는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 차 있다. 음식물 쓰래기들은 하나같이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 놓은 듯한 색깔을 하고 있다. 어디로 가도 그 끔찍한 공기를 피할 방도는 없지만, 나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빠졌다.


사람은 평소 다니는 길에서 친밀감을 느낀다. 좀 더 빨리 가는 느낌도 받는다. 집 근처라 그렇게 생경할 것도 없는 길이지만, 나는 새로움을 느낀다. 길가에 터져 죽어 있는 쥐 시체를 보기 전까지는 기분도 썩 괜찮았다. 몇 달 전에는 우리집 바로 앞 도로에서 낙지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스팔트 위에서 쪼그라들고 있던 낙지에 비하면, 쥐의 사체는 차라리 평범하고 그럴싸하다. 죽고 나서 터진 건지, 터져서 죽은 건지 알 방도는 없지만, 쥐는 죽은지 한참이 지났는지 도로에 납작하게 말라 붙어 있었다. 마치 비율이 깨진 쥐의 사진을 인쇄해놓은 것 같다.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쥐의 얼굴. 쥐는 터져 죽었을 확률이 더 높아보인다. 그럴싸하네. 집 앞에서 낙지가 널부러져 있는 꼴을 봤을 때에는, 굉장히 당황스럽지만 유쾌한 기분이었다. 비싼 낙지를 누가 저기다 흘렸을까? 그 녀석은 자유를 찾아서 트럭을 탈출한 것일까? 사무엘**의 먼 친척일까?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할 수 있었으니까. 생물의 사체를 앞두고 하는 생각이 그 모양이니 썩 바람직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나는 원래 빻을 대로 빻은 인간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고통을 온 몸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쥐의 사체에서 나는 어떠한 상상의 여지도 찾지 못한다. 차가 시동이 걸리고, 모종의 이유로 제 때 움직이지 못했을 쥐. 뿌직. 끝. 그리고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청소를 게을리한 우리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니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등교하다가 참새가 죽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참새는 이차선 좁은 도로 한 가운데서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차가 멀리서 쌩쌩 달려 왔다. 참새는 좀처럼 날아갈 준비를 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그 참새를 보게 되었고, 차가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등교길에 뭔가 특별한 게 있지는 않았으니까. 차는 몹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 왜 안 날아가지? 저러다 죽을텐데. 불안감은 차가 다가올수록 커졌고, 마침내 참새는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뻗었으나, 늦었다. 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참새는 죽었다. 나는 그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감았던 걸로 기억한다. 꽤 거리가 멀었는데, 참새의 머리 아래로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실루엣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는 도대체 모르겠다. 내 잠재능력이라도 발동된 걸까? 나는 곧바로 눈을 돌려버렸고, 오전 수업 내내 멍한 상태로 있었다. 죽음은 그렇게 늘 황망했다. 쥐도, 낙지도, 나도. 쥐를 보고 낙지를 생각하고 참새를 떠올리다보니 어느새 편의점에 도착했다. 참, 간편한 삶이다.


담배 한 갑, 도시락 하나. 여름철이라고 장어 도시락이 나왔다. 이번에는 원래 가던 길로 가기로 한다.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것 치고는 싼 1L짜리 주스도 하나 샀다. 당을 줄이라고 내게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쥐, 낙지, 낙쥐, 참새, 날아다니는 쥐, 어머니, 당 줄이기, 제레미 올리버, 아니, 제이미 올리버.... 라이터를 들고 나오지 않았기에, 돌아가는 길에 밖에서 담배라도 필 요량으로 라이터를 하나 샀지만 나는 단어의 굴레에 빠져 어느새 방에 도착하고 말았다. 역시나 간편한 삶이다.


식사를 대강 마치고, 빨래를 돌렸다. 나는 요즘 빨래에 열심히다. 무언가 긍정적인 습관을 하나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학이 가깝고 나는 다시 일상을 찾아야 하는 운명인데 여전히 나는 고3 수능 끝난 직후를 못 벗어나고 있다. 컴퓨터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컴퓨터 쿨러에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위치를 옮겼다. 두 대, 세 대. 나는 연거푸 담배를 폈다. 밤을 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일은 수강 신청이다. 시간표를 짜야한다. 네 대. 아무렴 어때. 뜬금없이 성욕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손을 움직여 자위할 의욕조차 없었다. 사건 없는 일상과 사건 없는 삶. 쥐와 낙쥐, 낙쥐와 낙지. 며칠 전부터 멍하니 켜져 있는 습작 문서. 깜빡이는 커서. 다섯 대. 아, 이젠 정말 모르겠다.



*SSD(Solid State Drive) :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와 달리 반도체를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하는 보조기억장치.

**사무엘 : 코난 오브라이언이 한국의 수산시장에서 입양해 미국으로 데려간 낙지.

(관련 링크 : http://www.huffingtonpost.kr/2016/09/01/story_n_11808512.html)


농담 반 진담 반 글쓰기. 나는 재밌네 적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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