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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Jul 25. 2017

가짜 소설 1.

일상과 소설

밤을 지새우며 담배를 수북히 핀다. 나는 내가 담배를 필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하루에 한 갑도 너끈히 피는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었다. 애연가라고 스스로 부르며 낄낄거렸던 게 벌써 이 년 전 일이라니. 한 갑을 피면 밤이 족히 지나간다. 예전에 봤던 "홀리 가든"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곧장 그러곤 했다. 우울한 과거가 덮쳐 오면 그는 그렇게 버텨내는 듯했다. 마치 닻을 내린 배처럼.


내일은 방에서 담배 피지 말아야지. 또 쓸모 없는 다짐을 한다. 통조림 캔에 담배 꽁초가 수북히 들어차 있다. 방에서 좀처럼 담배 냄새가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러면서 또 새로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컴퓨터 모니터와 나 사이에 연기가 가득히 들어찼다가, 산산히 사라진다. 늦은 밤이지만, 무선 청소기를 켜 떨어진 담뱃재를 치운다. 하나라도 미루다 보면 나는 또 거기에 짓눌리게 될 걸 아니까.


시간이 늦었다. 자야 한다. 언젠가 페이스북인가 트위터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꼭 나처럼,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이 늦게까지 깨어 있는 이유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오늘(혹은 어제)에서 무엇이라도 이루기 싶기 때문이라고. 불안함이나 초조함이 그 원인이라는 거겠지? 정확한 건 모르지만. 나는 임상 심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말이 썩 마음에 들어 언제고 기회만 닿으면 하곤 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마치 염탐이라도 한 듯 잘 설명해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할 일은 없다. 그냥 우울하니까, 잠이 오지 않으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다. 치질이나 손목 통증이나 구부정한 자세 같은 것들은 다 이 나쁜 습관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귀가 터질듯 헤드셋 사운드를 키우고 좋아하는 영화 OST나 노래를 듣는다. 뭐든 이 끔찍한 사실, 하릴없이 흘러가는 시간으로부터 나를 격리해줄 것이라면 좋다. 머릿속을 웅장한(Epic) 노래로 꽉 채우며, 내 행동이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그 자체로 시간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말이다. 


나의 나날은 좀처럼 사건이 없다. 사건이 없는 소설도 있다고 에전에 수업 시간에 한 번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다. 그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을 뵈면 나는 어떤 얼굴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똘똘했던 아이가 이토록 무기력한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을 보면 뭐라고 하실까. 안아주실까? 나는 아직도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간다. 노래는 집중할 틈도 없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또 다른 노래가 재생된다. 끊임없이 반복된다.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글을 쓰려고 구글 문서를 하나 열어놨지만, 27인치짜리 거대한 백지에 압도된 채로 커서가 깜빡이는 것을 들여다 볼 뿐이다.


샤워라도 할까? 집을 치울까? 오늘 쓰래기 버리는 날이지.... 생각은 끊이지 않지만 정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숨을 참았다. 심장박동 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커서가 깜빡이는 속도를 따라 점점 빨라진다.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공기를 찾아 현실로 부상한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밤은 길다. 미치도록 길다.



자전적 소설 같은건 이제 고운 눈초리로 읽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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