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은 목소리다. 갓 30대이던 언니는 70대 후반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변치 않은 목소리가 45년의 세월을 거슬러 초동으로 나를 데려간다. 열여덟 살 혜연을 만난다. 아직 당당히 설 줄 몰랐거나 설 수 없던 여리고 작은 여자아이... 소소한 기억들이지만 그립고 아련한 풍경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더불어 그리운 사람들도 마구마구 우리들 이야기에 들어온다.
살아 있으니 만나는구나 또는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된다 라는 말은 역시 진리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내 마음 들여다보기 작업을 시작했다. 겉모습은 분명 행복한 사람 맞는데 속모습은 그저 슬픔과 분노인 까닭을 알고 싶었다. 치유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이미 다 울어서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샘이 끝없이 솟았다. 10대 말부터 늦깎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나에게 듬직한 언덕이 되어준 그녀가 그 시절의 물리적 환경과 함께 그림책의 한 페이지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올라가야 할 길고 높은 계단으로 그려졌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줄줄이 불려나온 지난 풍경들은 너무 슬퍼서 가슴 저렸고... 아름다웠다.
내 그림책자서전 한 페이지에 담긴 그녀가 책이 완성된 몇 달 후 실제로 내 삶으로 왔다. 나는 그녀와 너무나 많은 삶을 공유하고 있구나.
내가 늦깎이 대학생이 되도록 초동에서 불러낸 옥자 언니와 초동에서 나가 당당히 설 수 있는 힘을 키워준 ㅇㅇ 언니.
이제부터 나는 온전한 삶을 그리게 될 거 같다. 아파서 슬퍼서 화가 나서 숨이 멎을 것 같았던 시절의 고통들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겠구나. 그 과정이 벅차도록 소중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