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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rry Sep 22. 2021

Vincent, 그가 그리운 밤

기차는 빠른 속도로 다섯 그루의 나무를 지나쳤다

꽤나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5개월 만이네요.

사실 쉼의 시간들도 많았는데, 나름 ‘공식적’ 휴일인 명절의 끝자락에야 이렇게 자리 잡고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의 여유가 지지리도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가끔씩 저도 모르게 브런치에 들어와 그동안 다녀간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할 때는 괜히 반가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적었던, 올해 제게 있어 가장 큰 행사인 ‘졸업전시’를 향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달도 넘게 남았는걸요. 어쩌면 전시 이후에 더 바쁠지도 모르겠어서 아무래도 지금이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제 안부를 전하기엔 적기인 것 같습니다.


다들 안녕하신가요?


그저 인사치레가 아닌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분들이 대부분인) 여러분의 안부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것을 통해 정말 우리는 홀로 살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는 것 같습니다. 슬프게도 그런 외로움 혹은 우울이 극도로 심해져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드물지 않게 들려오는 요즘, 전에는 특별히 관심 갖지 않았던 이들의 안부가 정말 궁금한 요즘입니다.


전시 준비로 겉으로는 다른 어느 해보다 가장 행동반경이 적은, 나름 정적인 삼계절을 보냈지만 마음만큼은 참 다이나믹하기도 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지만, 한 번도 그림에는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제 가능성을 봐주신 교수님의 “넌 할 수 있어”라는 한 마디는 제가 생각지도 못한 일러스트레이션 프로젝트로 저를 이끌었고, 다행히도 무사히 여기까지 오면서 저는 제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영상 디자인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제 과한(?) 개성이 먹히지 않아서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차가운 피드백을 받은 날들도 있었더랬죠. 그런 날에는 어김없이 Don Mclean의 Vincent를 들으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보듬으며 잠들기도 하는 그런 날들도 있었고요. 빈센트 반 고흐, 과거의 사람 중 딱 한 명을 만날 수 있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그를 선택할 거에요.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저를 괴롭히는 오른팔의 통증은 여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 그림 그리기가 이제는 마냥 행복하지 못한 취미가 되어버린 것이죠. 터무니없는 비유 같지만 정말 마치 무인도 혹은 화성에 갇혀버린 이가 내일 그리고 모레의 생존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아주 조금씩 나누어 먹는 것과 같은 처절함으로 팔을 아끼며 작업을 하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달까요. 이 통증을 누가 알까, 하루는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차라리 죽고 싶다는 기도를 하던 중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다시 일어날 위로를 얻기도 했고요.


뭐 이런 감정에 북받치던 날들도 있었지만, 어두운 시간들이 지나고 어김없이 제 방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과 건강히 뛰고 있는 심장이 여전히 ‘오늘’이라는 선물이 제게 주어졌음을 말하고 있더군요. 사실 당연하지 않은 이 선물을 거부하기엔, 저보다 더욱 아파할 이들이 먼저 떠올라 너무 늦어버린 것이죠.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존경하는 지나영 교수님을 통해 알게 된 이 말은 오늘도 제게 용기를 줍니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를 위해 일어났다”는 억지스러우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그 말 역시도 곱씹고 있자면 이상하게 힘이 솟습니다.


제 글을 혹시 한 두 편이라도 읽으셨던 분들은 눈치채셨을지 모를, 이제는 우리의 삶에 너무 깊숙이도 들어와 버린 ‘기후위기’를 주제로 졸업작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 단어를 듣자마자 늘 등장하는 모티프와 진부해져 버린 표현들이 떠올라 벌써부터 지루함(결코 지루한 주제는 아니지만, 여기서는 표현방식을 말합니다)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은 무겁고, 불편할 수 있는 주제였기에 작업 과정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기사를 찾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기를, 그래서 지금이라도 전시 주제를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슬프게도 모두 사실이었고, 이미 기후위기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로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기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절망적인 언어로 점철되지 않는 게 중요해요. 긍정적인 이야기를 담은 물건을 디자인해야 해요”라는 말을 떠올리기도 했고, 툰베리의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해요. 희망적이지 않다고 진실을 숨길 순 없죠”라는 말을 떠올리며, 절망과 희망,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의 폭풍 속에서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절망이 좀 더 컸지만, 지금은 조금씩 희망에 무게를 두기로 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는 것.

나에게만 집중했던 시선을 이제는 내 곁의 이웃으로, 그리고 조금씩 더 멀리 확장해나가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기에, 오늘 조금 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이 용기와 사랑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달이 참 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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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불안한 시국으로 인해 전시 장소는 서울에서 포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0월 29일부터 한동대학교에서 6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혹시 또 변경사항이 생길지 모르니 전시 일주일 전에 확정되는 날짜와 장소를 다시 올릴 예정입니다.)  얼른 만나서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날들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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