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이 죄를 지으면 가는 곳이 대학원이라던데.”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 얘기지만, 내 대학원 생활은 그렇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기억만은 아니었다.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건, 학부 시절 들었던 운영체제 수업 때문이었다. 교수님의 수업은 정말 흥미로웠고, 운영체제라는 분야는 그야말로 ‘종합예술’ 같았다.
하드웨어라는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어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마법사 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윈도우를 만든 빌 게이츠도 운영체제를 개발한 사람이었잖나. 컴공을 전공하면서 한 번쯤 ‘나도 그런 멋진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깊이 배워보고 싶어서 대학원에 갔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순수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배들이 “고생할걸?” “진짜 잘 생각해 봐” 하며 말렸던 걸, 나는 그냥 흘려들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다 이유가 있었더라.
물론 대학원 생활이 전부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분명 배우는 것도 있었고, 의미 있는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도 ‘별로였다’는 인상이 남은 건, 딱 한 사람 때문이었다.
한 선배가 있었는데, 참… 뭐랄까, 그냥 ‘힘든 사람’이었다.
군대식 문화가 몸에 밴 듯한 말투와 행동, 뭘 시키면 꼭 사람을 쥐 잡듯 몰아붙였다. 잠잘 시간도 쪼개서 하라는 말이 입버릇이었고, 마음에 안 든다며 다 다시 하라는 일도 많았다.
그 선배는 군대를 안 갔는데도 말이다.
분위기도 늘 무거웠다.
작은 실수에도 얼굴이 굳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괜히 위축되는 그런 분위기.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분히 괴로웠다.
다행히 그 선배는 오래 머물지 못했다. 다른 선배와의 갈등으로 연구실을 떠났고, 나도 그제야 숨을 좀 돌릴 수 있었다.
내가 유난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후배들도 다 비슷하게 겪고 있었더라.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세상은 참 묘하게 좁다.
대학원 졸업 후 인턴으로 들어간 스타트업에서, 또 그 선배를 만나게 됐다.
심지어 같은 팀이었다.
처음엔 괜찮아 보였다.
“나도 예전에 그런 상사 만나서 고생했어.”
“그땐 내가 어려서 그랬지.”
이런 식으로 반성하는 말을 하길래, ‘사람이 달라졌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예전 모습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했다.
뒤에서 은근히 사람들 괴롭히고, 사소한 일에도 집요하게 군다든지.
결국 나도 한 번 욱해서 옥상에서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그리고 곧바로 사과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꼭 그런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딜 가든 똑같아.”
근데 그 말, 나는 믿지 않는다.
정말 답이 없다고 느껴질 땐,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게 맞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어디든 완벽한 곳은 없지만, 나한테 더 맞는 곳은 분명히 있다.
그건 직접 옮겨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다.
그 선배와 멀어진 뒤, 나는 훨씬 숨 쉬기 편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더 좋은 경험도 할 수 있었고,
“아, 이렇게 괜찮은 팀도 있구나” 하는 걸 몸으로 느꼈다.
그 후에도 다른 후배들이 그 선배와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걸 보며, 내가 겪은 일이 예외가 아니었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그 선배에 대한 소문은 지금도 간간이 들려오는데, 역시나 그리 반갑진 않다.
이후 나는 다른 팀으로,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더 나은 사람들과 더 나은 환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 누가 “직장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옮겨봐. 팀을 옮기든, 회사를 바꾸든.”
‘어딜 가도 똑같아’라는 말은,
사실은 아무 데도 못 가게 하려는 말일 수도 있다.
진짜 똑같은지 아닌지는,
떠나보기 전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