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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풍경

by 우승리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과, 혹시나 하는 불안이 동시에 몰려왔다.

‘그래, 이럴 수도 있겠지’라며 태연한 척했지만, 심장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뇌동맥류.


<리스본행 야간열차> 소설에서나 처음 접했던 병명이 떠올랐다.

뇌질환으로 돌아가신 장인어른 이야기, 그리고 종종 두통을 호소하던 아내의 말이 겹쳐졌다.

결혼 후 아이 둘을 낳느라 검진을 미뤄왔는데, 미뤄둔 불안이 현실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별일 아닐 거야.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야.’

스스로 긍정회로를 돌려봤지만, 담당 의사의 말은 무거웠다.

“크기가 작지 않아서 수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수술까지는 아닐 줄 알았는데…’

분명 땅을 딛고 있는데도 바닥이 꺼지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정보를 찾아봤다.

치료 방법은 세 가지였다.


개두술 – 두개골을 열어 클립으로 결찰하는 방법

코일색전술 – 동맥류 안에 코일을 넣어 혈류를 차단하는 방법

추적 관찰


우리는 당연히 3번을 바랐고, 그다음이 2번, 마지막이 1번이었다.


하지만 여러 병원을 찾아간 결과, 권유받은 건 모두 2번, 코일색전술이었다.

뇌를 건드린다는 사실이 무섭게 다가왔지만, 결국 아내의 뜻에 따라 첫 병원에서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2025년 1월, 뇌조영술 검사를 했다.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날의 기다림은 유난히 길었다.


소견은 역시 코일색전술. 시술일은 8월로 잡혔다.

그 순간부터 7개월간, 마음속엔 짙은 그림자가 자리 잡았다.

애써 잊으려 해도, 불안은 틈만 나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오만가지 기도를 했다.

수술 당일은 날씨가 맑길, 시술 시간은 의사의 컨디션이 가장 좋길, 간호사들이 실수 없이 케어해주길…

별것 아닌 소망들을 빌며,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러다 갑자기 근자감이 솟아올라

‘다 잘 될 거야!’

자신했다가도,

금세 쭈그러들며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떡하지…’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쳤다.

시술 전날, 아내와 병원에 입원했다.

첫날은 검사를 마치고 누웠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혈압 체크와 상태 확인으로 간호사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했기에, 긴장은 풀릴 틈이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운 뒤, 드디어 시술 시간이 다가왔다.


침대에 누워 시술실로 이동하는 아내.

괜히 감정이 터져버릴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무사히 지나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아내를 보내고 남은 입원실.

짐을 정리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시술이 끝나려면 두 시간.

그 시간이 억겁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그리고, 아내를 다시 마주했다.


숨결도, 눈빛도, 웃음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우리의 삶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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