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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의 무게

by 우승리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태어난 지 1년이 되었을 무렵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오랜 시간 동안,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는 일은 없었다.


죽음을 마주한다는 건 마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을 억지로 삼키는 것과 같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감정을, 우리는 살아가며 반복해서 맞닥뜨려야 한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무게다.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아 있는 죽음은, 한 살 아래 후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셨고, 그 소식은 고등학생이었던 우리에게는 너무 이른 이별이었다.

장례식장엔 말없이 울먹이는 후배가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이하던 그 아이를 위해,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운구를 도왔다. 관의 낯선 무게를 조심스럽게 옮기며, 마지막 예를 다하려 애썼다.


장례식이 끝난 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동생들, 제가 잘 보살펴 볼게요.’


지금 돌아보면, 남의 가족사에 지나치게 감정이입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남겨진 후배가 너무도 안쓰럽고 마음에 걸렸다.


시간이 지나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희미해질 즈음,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상상만으로도 숨 막히는 일이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중 함께 셰어하우스를 썼던 형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인종차별이 잦았던 지역이라 처음엔 원주민이나 현지인에게 피해를 입은 줄 알았다. 그러나 장례식장에서 들은 진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한국으로 귀국을 앞두고, 형은 그동안 모은 돈을 환전하기 위해 같은 한국인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살해당한 것이다.


죽음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더욱 어두운 그림자만 남긴다. 형이 마지막 순간에 느꼈을 두려움을 상상하니, 가슴이 턱 막혔다.

타국에서,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같은 국적의 사람에게 왜 그런 끔찍한 짓을 당해야 했을까.


형과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늘 편하게 말을 걸어주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형의 마지막이 그렇게 잔인했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삶은 길어질수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품게 된다. 때론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이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삶이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종종 이유 없이 불안해진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운수 좋은 날’의 결말처럼, 행복한 순간조차 어딘가 균열이 있을 것 같은 불길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평범해 보이는 오늘 하루가 얼마나 단단한지, 잊지 않으려 애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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