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백 일흔 엿새 190226
오늘은 제주 올레 8코스
6개월 제주 살이의 마지막 올레길.
19km가 넘는다니 좀 부담스럽다.
걷기에도 긴 길이지만, 걸으며 중간중간 어반스케치를 하니 시간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2월의 짧은 해가 지기 전에 마쳐야 하는 부담.
다리야~ 오늘 올레길을 잘 부탁해.
화이팅하고 출발!
월평에서 부터 계속 요트 투어 광고판이 보이더니
바다에 떠 있는 요트가 종종 보인다.
제주에도 대포항이 있네~ ㅎㅎ
조용하고 작은 포구인데 횟집들이 많은 것을 보니 요트 관광하러 많이 오나 보다.
길을 걷다가 경치가 좋은 곳에 멋지게 지은 집이 있어 감탄했더니 바로 옆 해변가에 그 집이 들어간 시가 있다. 시비까지 멋지게 세워 놓았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다들 비슷한갑다.
주상절리가 보인다. 꼭 주상절리 관광 단지가 아니어도 이 근처가 다 주상절리 지형이구나.
주상절리 입구를 지나서 나는 올레길로 간다.
해변만 보며 걷다가 고개를 돌리니 한라산이 있네!
하,,, 정말 한라산의 미친 존재감.
제주 어디에서도 보이는 한라산 너무 좋아!
베릿네 오름.
전망대에 오르니 한라산이 서귀포 바다까지 이어진 것이 보인다. 땅 끄트머리 범섬까지.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다.
서귀포 쪽이니 한라산 윗세오름 오르는
영실코스가 보인다.
영실코스의 오백장군 바위까지 보이네!
(팔레트를 보면 백록담에서 제물로 바쳐진, 빠진 물감 2개 가 보인다. ㅋㅋㅋ)
중문 관광 단지에 들어섰다.
모래사장 너머 멀리 보이는 하얏트 호텔과 주상절리. 사진으로는 멀리 보여도 눈으로 보면 가까이 보인다.
중문 해녀의 집에서 보양식 사 먹기.
붉은 해삼 한 접시 2만원.
꼬득꼬득 씹히는 해삼의 식감을 좋아하는 나.
맛있게 먹고 귤도 두개 얻어 온다. (지금 귤철은 지났으니 귤은 아닐테고 천혜향쯤 되려나?)
올레길 걷느냐며 올레 코스로 가면 빙 둘러 간다고
저기 보이는 바닷길로 가면 경치도 좋고 빠르니
해안으로 가라는 해녀 아주머니의 조언.
오호~ 그렇단 말이지?
오늘 코스도 길어서 부담스러웠는데, 해변으로 질러 가자. 기백 넘치는 모험가의 선택을 한다.
오, 역시 멋있다!
올레 코스로 갔으면 이 절경을
못 보고 지나갔을 것 아니야!
멋져서 발걸음이 멈춰진 곳.
이곳에서 어반스케치를 시작한다.
스케치를 거의 다 했는데 (그래야 5분, 길어야 10분)
갑자가 파도소리가 크게 들린다.
깜짝 놀라 바다를 보니,,,
파도가 나를 향해 달려 오는 것 처럼 보인다.
혼비백산해서 짐을 챙겨 출발한다.
오마나~ 저 앞에 나가는 길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물이 차면 어떻하지? 물 들어오는 때인가? 물때 확인도 안하고, 남의 말만 믿고 덤비다니,, 나를 자책하는 목소리가 올라온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희희낙락 즐거웠는데 말이다.)
혼비백산해서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 보니 해변에 사람이 보인다. 저 근처에 올라가는 길이 있나보다. 휴,,,
그제서야 안심하며 천천히 걷는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앉아 마음을 진정 시키며 채색을 한다. 놀라긴 했어도 물이 계속 들이치는 것도 아니고,,, 올라가는 길 확보도 되었는데, 이 풍경을 그냥 두고 가긴 너무 아까웠다.
물이 들어 오는데 더럭 겁이 난 것을 보니
살고 싶은가 보다.
육지 살 땐 가끔 그냥 이대로 죽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은 가족의 슬픔이 걱정이지, 나만 생각한다면,,. 꼭 살아야한다는 악착같은 마음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죽을까봐, 물이 차오르는 절벽에서 곤란해 질까봐 몹시 두려웠다.
바닷가에서 만난 구세주 같은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출입제한 안내판이 보인다.
아까 그 길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갯깍 주상절리 가는 해병대길이었나 보다.
낙석의 위험으로 폐쇄되었다니 길이 있긴 있었구나.
그 길을 보지 못한 아쉬운 마음과
그래도 안전이 제일이라는 두 마음이 번갈아 올라온다.
멋진 갯깍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낙석의 위험이 있어 폐쇄된 길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갔을까, 안 갔을까,,,
닥치지 않고 생각으로 짐작하는 것은 이제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카 자바칩 프라푸치노 무려 그란데 싸이즈로!
카페인 수혈과 당충전의 힘으로 또 걷자!
예래 생태공원을 지나 논짓물 해변.
여름에 물놀이 하기 정말 좋겠다!
작은 해변, 민물 노천탕에 그늘도 있고 작은 카페와 화장실까지. 조용하고 편안한 시간 보내기에 적당해 보이는 해변.
오르막을 올라와 뒤를 돌아보니 한라산과 해안선이 보이고, 앞에는 진황등대가 멋있다.
감탄하며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산방산과 박수기정이 보인다.
대평 포구에 거의 다 왔네.
오늘 하루종일 '늦으면 안돼' 생각에 너무 빨리 걸었나 보다. 시간이 남네 ㅠ ㅠ
갑자기 시간이 남아서 허탈하다.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박수기정 풍경 그리기. 햇살이 따갑다.
앗, 여기서 이거 그릴걸,,,
해녀 고무옷과 물질 도구를 보니
왠지모르게 가슴의 울림이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찾아 오는 관광지에서
칠성판을 머리에 이고 물질하는 기분은 어떨까.
대평 포구 도착해서 종착지점 스템프 찍기.
중간스템프를 놓쳤다.
차를 가지고 중문 주상절리로 돌아간다.
화장실 앞에 있는 8코스 중간 스템프.
아까 저 화장실도 들렸는데
스템프는 못 보고 지나쳤군.
스템프를 찍고 제주 화투 기념품 구입.
문화상품이라 비싸구먼.
저녁은 냉장고를 털어 먹는다.
닭가슴살 구이와 딱새우 삶아 먹기.
오늘은
사실 힘들지도 않은데,
힘들까봐 마음이 더 힘든 날이었네.
내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과
삶에 대한 의지를 이상한 방법으로 확인한 날.
여전히 신비스러운 섬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