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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Kim Aug 08. 2020

3. 잔인하고 살벌한 폐암 선고

여명이 고작 9개월이라고요?



  암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겠지만 정확하고 공식적인 전문가의 소견을 받기 위해선 여러 가지 검사 예약을 잡아야 했다. 정확한 병명과 상태를 세부적으로 파악하고 종양의 크기나 위치, 전이도 등 다양한 상황들을 파악하여 환자에게 어떠한 치료요법이 가장 적합한지 알기 위해서는 조직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검사들은 후에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암환자라면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중증환자 등록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조직검사는 과거부터 시행되던 절제나 절개를 통한 생검뿐만 아니라 미세한 바늘이나 침 등을 이용하여 비교적 간단하게 세포를 채취하는 방법도 있다.  

 

 피검사와 엑스레이 등 간단한 검사를 시작으로 PET CT, MRI 등 현시대 최첨단 의학기술이라지만 우리에게는 차갑게만 느껴지는 의료장비들과 며칠을 동고동락하며 찾게 된 아버지의 최종 진단명은 <소세포 폐암 확대기>.

 

 폐암은 폐에서 악성종양이 자리 잡아 시작된 원발성 폐암과 다른 기관에서 전이가 된 전이성 폐암으로 나뉜다. 원발성 폐암은 악성 종양의 크기와 형태 등의 병리조직학적 기준에 따라 비소세포암과 소세포암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80~85% 정도를 차지하는 비소세포암은 진행 상황(*TNM 분류)에 따라 몇 기인 지 나누어지며 소세포암은 제한성과 진행성 2가지 병기로서 분류된다. 드라마에서 암에 걸린 주인공이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인지 ~암 말기라는 절망적인 용어를 주로 사용하곤 하는데 실제론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의지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인지 그다지 적극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다시 정리하자면 아버지는 소세포 폐암 진행 병기 상태였고 폐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원발암이 이미 뇌, 림프, 위장 등 아버지의 장기 이곳저곳에 퍼져 온 몸을 빠르게 망가뜨리고 있었다. 특히 겨드랑이와 턱 부분에 자리 잡은 임파선에 전이가 되어 온 몸에 퍼져 있는 수많은 혈관 속 혈액을 통해 머리부터 발 끝까지 암세포를 운반하고 있었다. 절망이었다. 말 그대로 절망이었다.    

 

 소세포암이 비소세포암과 달리 보이는 특징은 1)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2) 항암 화학요법의 반응성이 비교적 좋다는  3) 재발률이 높아 전체적인 예후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보였던 치매와 같은 증상은 뇌로 퍼져 있는 좋지 않은 암세포가 뇌신경을 자유자재로 뭉개버리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항암치료를 하시면 9개월 정도고요.
이대로 내버려 뒀을 경우에는 시기를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입니다. 빨리 항암치료를 시작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병원 출입이 불가능한 나를 위해 어머니는 스피커폰을 켜 두었고, 나는 마치 사형선고가 막 내려진 스산한 법정 안에 있는 것처럼 긴장감에 입이 바짝 말라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본인이 담당의라고 소개한 의사의 짧지만 임팩트 있는 아버지의 상태와 연명 기간, 9. 개. 월.

그 한 글자 한 글자가 그대로 심장을 찔러대는 듯한 잔인하고도 살벌한 통보였다.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건

나와 어머니만이 이 사실을 알아버렸고

몇십 년을 함께 해 온 혈육에게 '아버지, 당신은..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비밀 아닌 비밀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

갑자기 묵직한 무언가가 머릿속을 사정없이 짓누른다.

'사실대로 말... 해야 할까? 아니면.. 당분간 숨기고 있어야 할까?'


정작 자신의 삶의 시계가 서서히 멈추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온갖 검사에 치여 집에만 빨리 가길 바라는 사람에게.    


*TNM 분류 : tumor, node and metastasis classification의 약자로, 국제 암 협회에서 분류한 악성 암 종양의 병기 분류에 이용되는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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