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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Kim Aug 08. 2020

4. 아버지, 그의 이야기

두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가며 그도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1959년 9월 1일 출생.

2020년 7월 1일 사망.


정확히 61년, 이 땅에 흔적을 남기고 하늘로 가셨지만

인간의 생과 사는 저렇게 단 두 줄로 정리가 되고

내가 아는 아버지의 역사는 쥐어짜 내 보더라도 이렇게 짧은 글 한 페이지로 간추릴 수 있을 정도일 뿐이다.

웃기게도 이제야 나는 아버지로서의 김OO이 아닌 그냥 인간 김OO의 삶이 궁금해졌다.

물어도 대답할 리 없는 내 나이 즈음의 그의 젊을 적 사진을 바라보면서.


내가 아는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군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겨우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장남이라는 삶의 무게만을 짊어진 채 가진 것 하나 없이 그렇게 상경했다. 지금의 국민은행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주택은행에 입사하여 성실함과 꼼꼼함만을 무기로 승승장구하였고 이렇다 할 든든한 지원군 하나 없이 지점장의 위치까지 올라섰다.그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물질적 어느 부족함 하나없이 귀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풍족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하루를 멀다 하고 술과 담배에 찌들어 휘청거리며 집에 들어오던, 새벽 내내 온갖 추태를 다 부리는 주정뱅이이자, 온 집안에 악취만을 풍기는 만취꾼일 뿐이었다.


그렇게 세상 물정에 밝고 소위 잘 나가던 아버지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건설업에 투자를 하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주변 달콤한 꼬임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사기였다는 사실이 판명 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이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을 하는 척 고작 동네 찜질방 이곳 저곳을 전전하는 모습을 들키기까지도.


그렇게 내 나이 열 아홉 살,

대학입시란 인생의 큰 일을 목전에 두고 우리 집안은 나락으로 툭 떨어졌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아버지란 존재는 나에게 원망과 애증의 대상이었다. 이런 일련의 어려움이 내 젊은 시절에 있었기 때문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 공부한거야라고 자위하면서도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바보 같은 사기에 휘말려 어머니와 누나를 고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그를 혐오했던 적도 있다.


우리 가족은 60평 대 고급 빌라에서 쫓겨나 반지하 월세살이를 전전해야 했고

우아한 사모님이었던 우리 어머니는 당장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고

나는 재수는 사치라고 생각하며 점수에 맞는 적당한 대학에 들어가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긴커녕

장학금과 아르바이트에 목을 매면서 무서울 정도로 철이 들어버려 친구 한 명 제대로 사귈 수 없었고

가장 이쁠 20대 초반의 나의 누나는 결혼식도 제대로 못 올린 채 도망치듯 신혼 생활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나도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야위어만 가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원망보다는 안쓰러움이 커져 갈 무렵, 강북삼성병원 외래를 예약하면서 아버지의 비밀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저희 병원 처음 진료 보시는 건가요?"

" 네, 그럴 거예요. "

" 그런데.. 김OO 님 진료 기록이 있네요. 좀 오래되긴 했지만 신경정신과에서요."

"... "


그렇게,

사회 속에서의 아버지와 집에서의 아버지, 두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살아가며 그도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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