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iden Kim Aug 05. 2020

2.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

아직은 인정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


보호자(保護者)

어떠한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


 3 12 저녁, 오랜만의 어머니와의 외출을 마치고  문을 열었을  내가 알던 아버지는 없었다. 평소 누군가가 집에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리면 방에서 잽싸게 나와보시던 분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낯선 사람은 세상을  잃은  방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없이 흩뿌려져 있는 계란 껍데기들을 멍하니 주시하고 있는 아버지였다. 마치 도둑이 들어 장롱 속을  뒤지고  것처럼  없는 옷가지들은  꺼내져 흩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초점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입은 삐뚤어져 있었으며  옆으로는 계속해서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우리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 해진 상황을 마치 알아챈 듯이 아버지가 어렵게 꺼낸 말들은 어눌해서 누구 하나 알아들을  없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병명은 과거 뇌졸중으로 쓰러져 뇌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찾아온 편마비로 걸음걸이가 정상인과는 다소 느리고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그 당시까지의 상태였고 어쩌면 아버지의 상태는 내가 알고 있는 병명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 순간 엄습해왔다. 재활병원에서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고 계셨고 호전되어가고만 있다고 말씀하셨던 터라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급하게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 증상을 설명하니 치매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쩌면 과거의 병력이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병원을 가보기를 권했다.


 아버지는 마치 치매 증상과 같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핸드폰으로 나에게 전화를 거는 간단한 방법조차도 잊어버린 듯했다. 급기야 아버지의 이름 석 자를 써보게 하였으나 상형문자와 같은 글자를 의미 없게 써내려 갈 뿐이었다. 나는 더욱 지체할 수 없어 자동차 키를 챙겨 부모님을 모시고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다. 항공업계에 종사하고 있어 미국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코로나 19 이슈로 인해 병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물론 예상은 했던 바였지만 막상 응급실 안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휠체어에 겨우겨우 올라탄 아버지를 밀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며 걱정의 한 숨을 쉬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3월의 새벽은 아직 바람이 차가웠지만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응급실 복도를 걸었을 아버지와 보호자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 가득이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 깟 추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2-3시간 여가 지났을까 어머니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벨 소리가 차 안의 차가운 침묵을 깨웠다. 혹시나 전화를 놓칠까 3시간 내내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막상 전화가 오니 받기가 무서워 한 참 동안 핸드폰의 진동만을 멍하니 느낄 뿐이었다. 그 당시 어머니의 가녀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아빠... 암인 것 같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상황이기에 나에게도 닥친 이 상황을 나는 실감할 수 없어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 핸드폰 멀리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숨소리를 한동안 듣고만 있었다.  

 "아빠는 알아?"

 "아직 이야기 못했어.. 이제 곧 아빠 나올 거고 정산하고 나갈게. 응급실 앞에 있어."

어마어마한 일이 본인에게 닥쳤다는 사실도 모르고 혹여나 자식에게 누가 될까 걱정하실 것이 뻔한 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머릿속이 복잡해져만 갔다.


2020년 3월 13일 새벽 3시 47분, 나는 이제 정말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버렸다.


아직 인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뇌에는 이미 암세포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이전 01화 1. 2020년 3월 13일 새벽 3시 47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