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nkiller-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진해거담제, 뇌압을 낮추는 호르몬제, 위장약, 식욕촉진제, 수면제 등,
아버지가 처방받은 수많은 약 중 희한하게도 진통제로 보이는 약은 없었다.
정기 진료를 받을 때도 통증이 있냐는 의사의 물음에 "아프진 않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아버지였다. 암세포는 점점 전이되고 있는데도 통증이 없다니 이상했지만 어쨌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아버지에게도 이상 변화가 나타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집으로 모시고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허리와 머리의 통증을 호소하는 일이 부쩍 잦아지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급발진하듯 그의 장기를 할퀴듯 찔러대는 돌발성 통증. 척추까지 전이가 된 건지 아니면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생활하게 된 이후로 그간 잘 느끼지 못했던 통증이 커진 건지 모를 일이었다. 통증이 찾아왔다는 것은 마치 암세포가 정상 세포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아버지의 신체 내 장기들을 거의 다 지배해간다는 암묵적인 신호 같은 것이었다.
처절하게 힘겨워하는 이를 대신하여 아파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이에게 정서적 지지나 따뜻한 위로를 한답시고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지금 당장은 그에게 쓸데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힘들어 보이는 날들이 잦아졌지만, 보호자랍시고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그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공감조차 할 수 없어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난감했고 스스로 화가 났다. 물론 같은 부류의 고통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마음의 병이 들고 있었다. 깊은 한숨이 늘어나고 수심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져 가는 정신적 통증 같은 것이었다. 그제야 환자를 집에서 케어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지인들의 진심어린 걱정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되었다. '함께 피폐해질 수 있다는 것'
예약된 외래 날짜를 급히 앞당겨 진료를 볼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처치로도 근본적인 통증의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진통제 처방이라도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강한 마약 성분으로 신경을 마비시켜 통증을 잊게 하는 마약성 진통제. 불행 중 다행인지 진통제로 인해 통증을 호소하는 일은 잠잠해졌지만 마약 성분의 영향인 건지 부작용인 건지 마치 주정뱅이가 된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고 반복하는 등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오시던 어렸을 때의 그 아버지를 다시 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그렇다고 하여 진통제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그야말로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집으로 모셨지만, 이것이 정말 아버지를 위한 가족들을 위한 길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져만 갔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느낄 정서적 안정감이나 가족들과의 추억들 모두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생각해보면 그 무엇보다 통증을 잡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카드로 마음속에 고이 담아두었던 완화의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호스피스' 네 글자를 아주 천천히 타이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