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준 일산병원 53 병동
김 OO 님 보호자시죠? 일산병원입니다.
병상이 한자리 났는데
오늘 오후에 바로 입원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렇게 아버지는 생각보다 빨리 집을 떠나게 되었다. 여러 호스피스에 대기를 걸어놓고 한 달여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아버지를 위한 자리가 생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음 한 쪽에서는 다행이라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 갑자기 찾아온 또 한 번의 이별에 대답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네. 그럼요. 가능합니다."라고 쉬이 대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버지와의 동고동락이 이젠 정말 끝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체계적인 의료 케어 속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속상함과 미안함, 안타까움에 뭐라고 딱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까지 이런 감정들에 휘말려서는 안 되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지금을 놓치면 언제 또다시 입원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었다. 환자를 위해서도, 보호자를 위해서도. 내가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하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숱한 감정들을 머릿속에서 떼어내야 했다.
마약성 진통제로도 이겨낼 수 없는 통증과 섬망 증세가 하루하루 심해지고 대소변과 싸움 등에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 가족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나 또한 회사의 상황 및 코로나 문제로 인해 불행 중 다행으로 꽤 장기적인 휴직이 가능했지만, 언제까지 회사일을 제쳐두고 아버지를 보살필 수 있을지에 대해 확답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어머니 혼자 아버지를 감당해야 하는데.. 불가능했다.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 플랜 B까지도 생각해두어야 했고 현실적으로 아버지의 의견만을 존중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다행히 누나의 가족들도 아버지를 뵙기 위해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 주어 불안해하는 아버지 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버지는 또다시 찾아온 갑작스러운 가족과의 이별을 가족들을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는 듯 큰 소란 없이 차에 힘겹게 올라탔다.
일산병원에 도착하자 고모 가족들까지도 아버지에게 힘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아버지와 짧은 인사를 나누었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나는 본관 5층에 위치한 호스피스 병동으로 휠체어를 이끌었다. 어수선한 일반 병동을 지나 복도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53 병동>이라고 쓰여 있는 표식을 만날 수 있었다. 잠시 쉬어갈 편안한 장소, 호스피스 병동의 첫 방문. 내가 느낀 일산병원 호스피스의 첫 이미지는 따뜻했다. 너무나도 따뜻했다. 일반 병동에서는 느낄 수 없던 고요함과 따뜻한 조명이 감도는 병실이 온통 분홍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분홍색은 사랑과 연민을 상징하는 색으로 공격적인 감정을 진정시키고, 정서를 안정시키는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고 한다. 분홍색 침대 시트는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그 동안 고생했어요. 잘 왔어요, 다 괜찮을거에요. 라며.
사회복지사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및 보호자 심리 상담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보니 간호조무사님은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우리 아버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계셨다. "김ㅇㅇ님, 잘 부탁드려요~ 잘 오셨어요."라며. 노련하고 인자한 모습의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들 역시 아버지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그 속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곳은 내가 생각했던 죽음을 기다리는 어둡고 우울한 곳이 아니었다. 병동에 있는 모두가 밝고 온화한 기운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희망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모두를 힘들게 하던 통증 속에서 찡그린 얼굴만 보다가 오랜만에 보는 편안한 표정의 아버지를 보니 사진으로 한 장 남겨두고 싶었다.
어쩌면 이곳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위한 '잠시 쉬어갈 편안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