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으로 생각해 본 아버지의 심리 상태
인간의 욕구는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하위 단계의 욕구 충족이 상위 계층 욕구의 발현을 위한 조건이 된다는 매슬로(Maslow)의 동기 이론
[네이버 지식백과] 욕구 단계 이론 [hierarchy of needs theory]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처방받은 식욕 촉진제가 전혀 필요치 않을 만큼 항암치료를 중단한 이후 아버지의 식욕은 왕성해졌다. 코다리찜, 낙지볶음, 단팥빵, 장조림 등.. 이상하게도 마치 걸신이 든 것처럼 먹고 싶다는 음식의 가짓 수도 점점 늘어났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그다지 식탐이 없는 사람이라 별다른 반찬 없이도 국 한 그릇이면 만사 오케이였다. 게다가 암투병 환자들은 항암치료와 관계없이 대부분 식욕부진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더 의아했다. 물론 음식을 먹지 못해 고생하는 것보다는 감사하고 다행인 일이었지만 왠지 모를 찜찜한 기분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식욕이 늘고 있다는 것은, 아버지의 몸에 자리 잡은 암세포들이 더 빠르게 성장하도록 영양분을 보충해달라는 의미인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승에서 머물 시간 동안 그간 먹고 싶었던 음식을 최대한 많이 먹고 가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나.
어머니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음식 솜씨를 발휘하셨다. 곧 세상을 떠날 사람이 이생에서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저렇게 이야기하는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리라. 어머니는 힘들다는 내색 한번 없이 영양 성분까지 고려해가며 어느 때보다도 훌륭하고 완벽한 밥상을 차려 내셨다. 하루에 적게는 세 번, 많게는 대 여섯 번. 옆에서 식사 수발을 들어야 하는 보호자로서는 늘어난 식탐이 부담된 것도 사실이었다. 온종일 밥 차리다 볼 일 다 본다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올 정도로 보통 사람이 느끼는 식욕의 간격보다도 너무 짧고 빈번했으니까. 그래도 스파게티와 같은 비교적 간단한 요리에도 어눌하게 맛있다라고 표현해주는 아버지가 고마웠다. 어머니 또한 아이처럼 잘 먹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꺼져가는 삶의 불길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보았을 것이고 뿌듯하고 또 고마웠을 것이다.
매슬로가 말하는 욕구 단계 이론(hierarchy of needs therapy)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1~5단계의 욕구 중 최종적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지탱하기 위해 1단계의 생리적 욕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그 이후의 욕구 표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다시 말해, 욕구 피라미드의 하위 계층의 욕구는 상위 계층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조건이 된다는 것인데 아버지의 경우도 이런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찌 보면 아버지의 식욕 증가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자기 욕구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자아실현, 자기 존중, 사회적 욕구, 안전의 욕구를 떠나 인간의 가장 원천적인 욕구로의 회귀.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은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식욕조차 발현하지 못해 결국 곡기를 끊는다는 이야기외 같다. 삶에 있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더 이상 중요시되지 않을 때 인간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마음이 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하는데 나는 그것이 다른 차원의 자아실현을 위한 기본적인 생리 욕구의 충족이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다친 정신과 마음을 치유하고자 하는 과정이자 욕구로서.
그러니,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