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iden Kim Aug 22. 2020

16. 그와 함께 한 마지막 나의 생일

부재할 사람과 공존할 사람


올해로 나는 만 33세가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그려온 궤적 속에는 부모와 연을 맺어 온 시간들도 포함되어 있다.

33년이 흐른 5월의 그날, 

앞으로 죽음으로 이 세상에 부재할 사람과 공존할 사람이 나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날도 아버지의 섬망, 대소변과 밤새 씨름을 하며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있었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데 작은 초콜릿 케이크 하나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그제야 오늘이 나의 33번째 생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들의 생일까지 챙겨주는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은 한편으로 어색했 것도 사실이었지만, 아버지를 집으로 모신  나의 아니 우리 가족의 일상은 오롯이 아버지에게 맞춰 돌아가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생일 따위는 내게 그다지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만큼은 처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살짝 아버지에게 내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하지만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작은 초콜릿 케이크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존재를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네가 바로 주인공이야.'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면서.   


 문득 눈가가 촉촉해져 있는 아버지의 파리한 얼굴을 보니 노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 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중략) /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

3 kg가 채 되지 않았던 33년 전의 그 작은 핏덩이가 어느새 훌쩍 커버려, 늙고 병이 들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다는 건 아마 꽤 오묘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가족의 생일날에 자신의 자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 울컥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그렇게 온종일을 울먹였다. 아직 부모가 돼 보지 않아 그가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떠난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간 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날들을 내어주었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게 더 편하다는 철없는 핑계로 정작 부모님의 자리는 무심히 비워두고 있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장본인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오히려 나의 주변에만 맴돌게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사람 중 하나였다. 어쩌면 부모님은 철부지 아들의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작은 생일 파티를 마련해 주셨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걱정도 많이 했다. 혹여나 아버지가 내 생일에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라고 혹시 모를 트라우마를 염려하는 이기적인 걱정. 아버지는 감사하게도(?) 잘 견뎌내 주셨고 덕분에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평생 잊지 못할 그 날의 기억은 이따금 아프기도 하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따뜻하게 남아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래도록.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면 더욱 좋겠고.     


곧 9월 1일, 아버지의 생일이 다가온다.

하지만 축하받을 그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케이크 위에 꽂혀있던 촛불처럼 연기처럼 그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지만

하늘에서도 함께 할 그를 늘 기억할 것이다.  

이전 15화 15. 완화의학과 외래와 호스피스 대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