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할 사람과 공존할 사람
올해로 나는 만 33세가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 그려온 궤적 속에는 부모와 연을 맺어 온 시간들도 포함되어 있다.
33년이 흐른 5월의 그날,
앞으로 죽음으로 이 세상에 부재할 사람과 공존할 사람이 나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날도 아버지의 섬망, 대소변과 밤새 씨름을 하며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거실로 나오는데 작은 초콜릿 케이크 하나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그제야 오늘이 나의 33번째 생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다 큰 아들의 생일까지 챙겨주는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은 한편으로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아버지를 집으로 모신 후 나의 아니 우리 가족의 일상은 오롯이 아버지에게 맞춰 돌아가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생일 따위는 내게 그다지 중요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때만큼은 처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살짝 아버지에게 내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하지만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저 작은 초콜릿 케이크가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존재를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네가 바로 주인공이야.'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면서.
문득 눈가가 촉촉해져 있는 아버지의 파리한 얼굴을 보니 노래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 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중략) / 양희은- 엄마가 딸에게
3 kg가 채 되지 않았던 33년 전의 그 작은 핏덩이가 어느새 훌쩍 커버려, 늙고 병이 들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다는 건 아마 꽤 오묘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가족의 생일날에 자신의 자리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 울컥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그렇게 온종일을 울먹였다. 아직 부모가 돼 보지 않아 그가 느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떠난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그간 나는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날들을 내어주었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게 더 편하다는 철없는 핑계로 정작 부모님의 자리는 무심히 비워두고 있었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장본인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오히려 나의 주변에만 맴돌게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를 떠나보낸 후에야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사람 중 하나였다. 어쩌면 부모님은 철부지 아들의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작은 생일 파티를 마련해 주셨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걱정도 많이 했다. 혹여나 아버지가 내 생일에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라고 혹시 모를 트라우마를 염려하는 이기적인 걱정. 아버지는 감사하게도(?) 잘 견뎌내 주셨고 덕분에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평생 잊지 못할 그 날의 기억은 이따금 아프기도 하겠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따뜻하게 남아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래도록.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면 더욱 좋겠고.
곧 9월 1일, 아버지의 생일이 다가온다.
하지만 축하받을 그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케이크 위에 꽂혀있던 촛불처럼 연기처럼 그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지만
하늘에서도 함께 할 그를 늘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