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iden Kim Aug 26. 2020

19. 6월을 넘기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것은 덩굴에 달린 마지막 잎새였다.


벽돌 담벼락에는 담쟁이덩굴의 잎새 하나가 떨어지지 않고 여전히 달라붙어 있었다. 기나긴 밤사이에 사나운 비바람이 그렇게 거세게 휘몰아쳤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덩굴에 달린 마지막 잎새였다. (중략)

"마지막 하나구나." 존시가 말했다.

"지난밤에 꼭 떨어질 줄 알았는데.. 밤새 바람 부는 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오늘은 꼭 떨어지겠지, 그리고 그때 나도 죽을 거야."

 

-오 헨리 <마지막 잎새> 중


 2020년 6월 2일(화)은 입원 예정일입니다.

 ★입원환자 안전조치 안내

 -보호자 및 면회객 전면 통제합니다.


 코로나가 점점 기승을 부리는 탓에 면회를 전면 통제한다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때만 해도 곧 상황이 좋아지리라 생각했기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입원 수속을 마친 후, "곧 올게요."라며 씩씩한 척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집의 풍경은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아픈 아버지와 함께 웃고 울고 부대끼면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이제야 사람 사는 곳 같다고 생각했던 집. 세 가족이 살기에 넓다고 생각한 적 없었던 집은 이상하게 휑해 보였고 그 차가운 적막 속에 어머니와 나, 단 두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마음 한 켠이 시리고 황량한 기분마저 들기도 했다. 매일매일을 아버지의 섬망 증세에 시달리며 '하루만이라도 제발 편하게 잠 좀 자고 싶다'고 속으로 몰래 바랐던 소망이 이루어졌는데도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이 상실감과 불안함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섬망 소리가 귓가에 맴돌거나 가끔은 악몽에 시달려 쉬이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럴 때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산병원 간호사실에 전화를 걸었다. 혹여나 너무 잦은 안부 전화에 업무를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그냥 내려놓은 적도 있지만, 내가 전화를 걸때면 마치 걱정으로 밤새 뒤척였던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간호사분들은 친절하게 아버지의 상태에 관해 이야기해주셨다. 아버지가 정서적으로 굉장히 불안해 보이거나 몸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을 때는 의사의 판단하에 짧게나마 면회가 허락되기도 했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들이 모여 있는 호스피스라는 특이한 상황에 속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최대한의 배려였다. 


 입원 후에 아버지를 아예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니 너무나 감사하고 다행이었지만, 짧은 면회를 하고 난 뒤의 겪었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모습, 다른 곳을 멍하니 보다 나를 보곤 이를 훤히 보이며 환하게 웃는 모습, 대소변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모습, 아무 말도 못 한 채 갑자기 아기처럼 흐느껴 우는 모습 등. 그 모습들이 뇌리에 박혔는지 불현듯 더욱더 선명해져 떠오르는 잔상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일상과도 같았던 그의 평범한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자 점점 악화되어가는 아버지의 상태가 오히려 확연히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병에 걸렸나 . 아무래도 암에 걸린  같아.."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이상한 말을 했다. 자신의 현재 상태와 병명 등을 모두 알고 있던 아버지였다. 저 말의 뜻이 이제야 자신이 큰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의 더욱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지녔던 모든 기억과 생각들이 슬슬 온전함의 궤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런 혼란 속에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을 두 손으로 감싸며 병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복도에서 한 동안 마음을 진정시키고 담당 간호사를 찾아갔다. 아버지의 상태가 아무래도 더 안 좋아진 것 같다는 나의 말에 간호사는 순간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김ㅇㅇ 환자분의 경우는 기도 쪽에 자리 잡은 큰 종양 때문에 밤사이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돌아가실 가능성이 커 보여요.. 속상하시겠지만 아무래도 6월을 넘기긴 힘들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죽음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직감하고 인정하는 중이겠지만,

6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간호사의 말은 아버지에게 차마 전할 수 없었다.

이대로 자신을 아예 놓아버릴까 봐.

덩굴에 달린 마지막 잎새에 자신을 투영하는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이전 18화 18. 호스피스 53 병동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