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비 내리던 새벽,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럼블피쉬 <비와 당신> 중
6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 같았다.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상황을 인정하고 순응해야 한다고 마치 언질을 주는 것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우리 가족의 하루하루는 불안함의 연속이었고, 언제 갑자기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가장 우리를 괴롭혔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이 혹여나 병원에서 온 것은 아닐까, 그렇게 숨죽이며 6월을 보내고 있었다. 누나 또한 나에게 전화가 오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물론 사람의 인생을 식품의 유통기한처럼 정확하게 규정해둘 수 없지만 우리 가족에게 6월은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간 우리를 괴롭힌 걱정과 불안이 무색하게 6월의 마지막 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6월 31일을 지나 7월의 첫날로 가고 있는 새벽 1시, 듣고 싶지 않던 전화벨이 울렸다. 031로 시작되는 일산병원 간호사실 번호였다. 그때만 해도 ‘6월은 넘기기 힘들 거라더니 역시.. 라며 괜히 주눅 들어있었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전화가 울리는 순간 걱정했던 상상이 현실로 바뀌어버렸다.
"여보세요...?"
"김ㅇㅇ님 보호자분, 지금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아버지가 지금 많이 안 좋으신 건가요?"
"네.. 오실 수 있는 분은 모두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새빨개져 있는 나의 멍한 얼굴을 보고는 어머니는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조용히 옷을 갈아입으셨다. 나는 급한 대로 우선 누나와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동차 키를 챙겨 급하게 집을 나섰다. 적막이 흐르는 밤하늘에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암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그 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었는데.. 나는 애써 침착하며 시동을 걸었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금방 갈게요.'라며 속으로 한참을 기도하였다.
헐레벌떡 도착한 나와 어머니를 간호사는 조용히 가족실로 안내했다. 문을 열면 지금의 모든 것이 달라질까 주저하고 있는 우리를 위해 간호사는 조심히 문을 열어주었고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입을 벌린 채 편안한 모습으로 주무시고 계셨다. 우리가 온 지도 모를 만큼 아주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ㅇㅇㅇ아빠, 우리 왔어요. 우리 왔다고요. 괜찮아요? 왜 이렇게 자는 거야. "라고 아버지를 흔들어 깨우는 어머니 등 뒤엔 이미 0을 가리키는 모니터가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 곁을 조용히 떠났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래도 6월은 잘 버텨주었구나, 미안합니다. 감사했습니다. 그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흔들어도 주물러도 일어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고 아버지의 몸은 아직 따뜻했다. “어.. 왔니?”라고 금방이라도 다시 일어나 웃어줄 것 같이.
2020년 7월 1일,
그렇게 그날도 비가 내렸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지난 날들은 회한의 눈물이 되어 비와 함께 흘러 내렸다.
이젠 다 끝났다고, 괜찮다고, 고생했다고, 걱정없는 곳에서 편히 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