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Epilogue
개인적으로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를 참 좋아합니다. 한 평생을 함께 해야 했던 장애와 암을 자신의 한계로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그녀의 용기 있는 행보는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별이 된 그녀의 대표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녀의 인생과 죽음을 단 한 문장으로 대변하는 딱 맞는 제목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불행하다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을 그녀는 오히려 기적이라 말합니다. 심지어 그 기적을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망연자실한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데 전부 나누어 주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나도 기적처럼 잘 살아왔으니 당신도 괜찮다. 괜찮다.' 라며 따뜻하게 두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상실감에 주저앉고 좌절감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또 한 번 살아갈 기적을 발견하기를 소망하면서 자신의 기적을 기꺼이 내어주는 故 장영희 교수를 기억합니다. 인생과 죽음 앞에 항상 겸손했던 그녀의 삶의 태도를 존경합니다.
어쩌면 살아갈 시간이 더 많은 30대의 나에게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지도 모릅니다. 지난 일은 다 잊으라고. 살아갈 날이 많은데 벌써 죽음부터 생각하냐고. 너무 우울한 감성에 빠진 것은 아니냐고.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겪게 되는 삶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마냥 슬픈 것도 마냥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은 유한하다는 교훈으로 내 삶과 인생에 대해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조차 내 인생이고 삶이라는 것을요. 앞서 걱정할 필요도 후회할 필요도 없이 그냥 그것도 내 삶이다 인정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포용력과 용기를 배웠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죽음이 제겐 가장 큰 유산이네요.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어주었고 인생을 살아갈 교훈들을 얻게 해 주었으니까요.
"이 세상에서 자기 할 일을 다한 거요.
이 세상의 일을 다한 거요.
자기가 땅에서 할 일을 다한 거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죽음이 무엇이냐고 묻는 어른의 질문에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쩌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정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태어남을 시작으로, 죽음을 끝으로 유한한 것이라면 이 땅에 태어나 자신의 할 일을 모두 다 마친 사람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이 세상의 순리이니까요. 그래서 고인에게 불쌍하다, 안타깝다가 아닌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이 맞는 건 아닐까요? 저는 아버지를 그렇게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세요.'라고요.
사실 오늘 9월 1일은 아버지의 양력 생신입니다. 휴직 중에 막연히 글을 써 내려가면서 어쩌면 아버지의 생신 즈음에 글을 끝맺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있긴 했습니다만 정말 9월 1일로 글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도 기적이네요. 이 글을 쓰는 내내 아버지께 선물로 바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고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그곳에서도 좋아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심지어 오늘부터는 복직까지 하게 되었으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여러 개의 기적들을 한꺼번에 만난 것 같아 어안이 벙벙합니다.
브런치의 작가가 되어 아버지의 삶과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반추해보면서 힘든 시기 속에서도 또 한 번 살아갈 기적을 얻었습니다. 변변찮은 글로나마 마음 깊은 곳에 켭켭이 쌓아왔던 감정들과 이야기들을 브런치에 모두 쏟아부을 수 있었다는 기회에 감사하고 재미없는 글들을 꼼꼼히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마치 자신의 일처럼 웃고 울어 준 소중한 관심과 위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위로와 교훈을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함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만들며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