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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en Kim Aug 31. 2020

29. 그녀도 누군가의 어머니였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여든 살 어머니의 이야기


우리 아들..
너무 많이 찼어.. 물이 너무 많이 찼어...
어떡해.. 미안해서 어떡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무섭게 퍼부었다. TV 채널을 돌릴 때마다 역대 최악의 장마에 쑥대밭이 된 이곳저곳의 참담한 상황이 여과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런 비극적인 뉴스들 속에서 어떤 한 장면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침수된 납골당에서 고인의 유해가 담긴 납골함을 가슴에 품고 우왕좌왕하는 유가족들의 처절한 모습, 엄마가 미안하다며 울부짖는 한 여성의 목소리. 순간 아버지가 계신 추모공원은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비가 멈춰야 가보던지 할 텐데.'라며 온종일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걸어왔다. 아마도 같은 걱정에 전화했으리라 직감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았다. 우리의 살가운 대화 속에 아버지의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전화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그녀의 얇고 떨리는 목소리에 느낄 수 있었다. 땅에 묻힌 아들이 걱정되어 아들의 아들에게 어렵사리 전화했다는 것을. 사실 아버지를 땅에 묻을 때 할머니는 그곳에 오시지 않았다. 모두가 예상하는 그런 마음 때문에. 자식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에 묻히는 모습을 제정신에 볼 수 있는 부모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며칠  다행히 비가 잠잠해졌고 할머니와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에서 다시 만났다. 수십  수백 번을 고민하고  고민하고 잠까지 설쳐가며 어렵게 이곳에 올랐을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렸다. 걷기조차 힘에 겨워도 아들이 묻힌 곳을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여든 살이 훌쩍 넘은 할머니의 눈시울은 붉어지다 못해 푸르스름해져 있었다. 오늘따라  이렇게 할머니가 한없이 작아 보이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했던 믹스커피를 조금씩 땅에 뿌렸다. 갑자기 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상하게 아버지는 비를 몰고 다니나 보다.


 "아들, 엄마 간다. 못된 자식.. 거기선 아프지 말고 있어."

돌아올 리 없는 대답을 기다리며 우리는 비를 맞으며 다시 현실로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주름 자국은 어쩌면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가슴에 묻었던 증거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그날도 또 한 줄의 주름이 아로새겨졌다.


https://youtu.be/Co2pmoSnw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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