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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Aug 04. 2017

5. 당신은 늘 옳다

나에게는 살면서 이렇게 닮은 구석이 많은 친구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나와 많은 부분이 닮은 친구가 있다. 좋은 것만 비슷해도 좋으련만 아픈 부분까지도 너무 닮아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암으로 떠나 보냈고, 그 친구의 엄마는 우리 엄마와 비슷한 병과 싸우고 있다. 이미 겪어봤기에 구구절절한 설명이 덧붙지 않아도 지금 그녀의 상황과 마음이 마치 내 일인마냥 공감될 수밖에없다. 특히, 그녀가 나에게 한 이 말은 작년의 내가 한 말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가란다고 진짜 가는
눈치 없는 딸이 된 것 같아




그녀는 엄마가 암으로 진단 받은 이후, 퇴사 후 계획하고 있던 한 달간의 유럽 배낭 여행을 취소했다. 누군가는 아픈 엄마가 있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냐고 쉽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을 터. 몇 달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해 오던 여행이 한 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는데 어떻게 미련이 하나 없을까. 대신에, 그녀는 그녀의 동생과 함께 짧은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 짧디 짧은 제주도 여행 마저 그녀는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괜찮다며 다녀오라는 엄마의 말이 있었지만, 엄마가 괜찮다고 했다고 진짜 여행을 떠나는 눈치 없는 딸이 될까봐 걱정이라 했다. 또, 떠난다고 해도 내내 마음이 불편한 여행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그녀의 고민의 무게는 모르고 주변 사람들은 아픈 엄마를 두고 여행을 떠나는 자신을 너무 쉽게 비난을 할 것 같아 더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그녀에게 나는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마라. 인생 마이웨이다. 너는 늘 옳다’ 등의 말을 건넸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사실, 작년의 나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엄마가 병원에 있던 시절, 나는 친구들과 저녁 약속 하나 잡는 것도 무척이나 죄스러웠다. 9시부터 6시까지 회사에 있어야 하는 것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고 싶었는데 현실상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시간을 엄마가 아닌 누군가와 보내는 그 순간에는 늘 신경이 쓰였다. 특히 엄마와 함께 하지 않는 순간이 즐거우면 나는 이내 생각하곤 했다.




엄마는 병원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텐데
나 혼자만 이렇게 웃어도 될까.
내가 이렇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나를 나무라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고민과 걱정이 있었지만 나의 모든 시간을 엄마와 보낼 만큼 헌신적이지는 않았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늘 ‘네가 이래도 되니?’ 라는 비난을 스스로에게 쏟아냈다. 그렇게 작년의 나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가장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었다.




하루는 꼭 가고 싶었던 뮤직 페스티벌에 참석했었던 적이 있다. 메케하고 답답한 병원의 공기가 아닌 기분 좋은 가을 바람과 함께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으니 정말 행복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이 페스티벌에 꼭 와야만 했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행복한 마음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 끝나면 바로 병원에 가겠다 등의 카톡을 보냈다. 엄마는 물론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놀고 오라고 했지만 한 번 생긴 불편한 마음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 때,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김제동의 강연 중 그가 한 말 한 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당신은 늘 옳다




숨막히는 잣대에 포박되어 있던 나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답정너 같을 지 몰라도 나는 누군가가 ‘아니야 너는 지금 엄마에게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내 친구도, 스스로를 너무 모질게 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김제동이 자신의 책 <그럴 때 있으시죠?>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구도 나만큼 나의 인생을 고민하지도 않았고, 나만큼 나를 잘 알지도 못함에도 내 자신에게 가혹했던 것이다.




작년의 나에게, 지금의 내 친구에게 그리고 또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고민하면서도 스스로를 다그치기만 하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늘 옳았고, 옳고, 또 옳을 것이라고. 가끔은 누구보다 따뜻하게 스스로를 안아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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