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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요 Sep 20. 2023

히요


 히요. 히요는 나에게, 지금 이 글을 부탁한 사람이다. 그녀는 부산에서 오래 살았고 그 도시에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란 공간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줄여서 ‘다방’이라 부르곤 했던 그곳에서는, 그녀가 만든 많은 행사가 열렸고 초대를 받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갔으며 또 잠시 머물렀다. (초대를 받았든 안 받았든, 거기 이유 없이 머물러 있었던 더 많은 수의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이처럼 그곳을 오갔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나를 머물게 했던 사람, 히요를 잘 알지 못한다. 그녀가 만든 공간인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곳을 몇 번이나 가보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밤에 잠을 자기까지 했지만 나는 그곳을 잘 알지 못한다. 그곳이 처음 재개발을 앞둔 대연동에 자리 잡았을 때도, 지하철에서 내려도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만 하는 칠산동으로 터를 옮겼을 때도, 그러다 문을 닫고 사라진 뒤 한참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나는 그곳을 잘 모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살면서 안다고 여겼던 것보다 잘 몰랐기에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 결국 마음에 남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나는 내 이해의 바깥에 있지만 마음에 남은 기억의 작은 조각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고, 2011년 경부터 ‘네시이십분’이란 팟캐스트 라디오를 만들고 있다. 이 라디오는 직장을 다니면서 혼자 글을 쓰고 있던 당시, 같은 대학을 다녔던 친구의 제안으로 만들게 된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친구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읽은 책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변에 세상과 불화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일없이 책 이야기를 나누며 지낼 수 있었다. 친구는 어느 날, 그런 우리만의 이야기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꺼냈다. 이제는 팟캐스트를 통해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송수신할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그 친구는 늘 해볼까? 하는 말을 꺼내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럼 해보자! 하고 일을 실행하는 사람이어서 그 말이 나온 지 오래지 않아 우리는 늦은 저녁 시간, 내가 다니던 직장 사무실에서 어느새 네시이십분 라디오의 첫 회를 녹음하고 있었다. 이걸 과연 누가 들을까 하는 의문 속에서도 우리는 즐겁게 라디오 녹음을 했다. 놀랍게도 200명, 300명, 많을 때는 1,000명 가까이 듣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10회 쯤 라디오를 만들고 업로드했을 때의 일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히요가 먼저 트위터로 말을 걸어왔다.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라는 순례길을 걸어서 여행하고 있는데 혼자 걸을 때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듣고 있다면서. 나도 그곳을 여행한 기억이 있기에 무척 반가운 마음이었다. (마침 라디오에서 순례길을 걸었던 경험을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이미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부산에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블로그를 찾아 보았다. 그런데 블로그를 몇 번이나 보았는데도 어떤 공간인지 도무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글을 올리는 것 같은데 이건 뭘까, 어떻게 운영하는 걸까, 의문이 늘어갔다. 결국 나는 그녀와 그녀의 공간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만 가진 채, 그해 겨울 부산 출장 중에 대연동을 찾아 그녀를 만났다. 


 문을 열고 처음 들어섰을 때 사직동 그 가게에서 보았던 사람이 마치 거기 주인처럼 앉아 뜨개질 같은 걸 하고 있기에 깜짝 놀랐다. 여기는 부산이 맞는데 이 사람은 왜 여기 와 있는 걸까. 그녀도 나도 자연스레 인사하긴 했지만 실은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공간의 경계가 뒤죽박죽 섞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는 찻집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던 한 사람이 이곳에서는 마치 다른 사람인 듯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였다. 히요는 늘 그렇듯 별로 놀라지도 않으면서 둘이 서로 아는 사인가, 하며 차를 내주곤 웃었다. 그런 일이 그 공간에선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았다. 


 생각다방은 물리적으로 히요가 얼마간의 보증금을 내고 몇 명이 월세를 각출해 유지되는 쉐어하우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거기서 생활하는 세 명의 사람만이 아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실험하는 공간이었다. 


 한 해가 지나고 이듬해 여름이 왔다. 나는 히요의 초대로 대연동의 다방에서 공개 라디오 녹음을 했다. 그때 우리가 다룬 텍스트는 김한민의 『카페 림보』란 책이었다. 그래픽노블인 이 책은 히요가 운영하는 생각다방과 같은 작은 공간, 그리고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었다. 책 속에서 주인공 림보 족들은 바퀴 족이 점령 중인 한국이란 나라에 침투해 림보의 독립을 쟁취하려 한다. 그들은 카페 림보에서 만나 커피를 식량 삼아 모임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잡지를 만들며 그것을 배포하는 이상한 형태의 독립운동을 벌인다. 그런데 어떤 림보 족들은 이 과정에서 바퀴 족에 회유되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또 어떤 림보 족들은 점점 줄어드는 림보 족의 숫자에 상심하다가 외국으로 떠난다. 나는 내가 하고 있던 네시이십분 라디오나 히요가 열었던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활동이 림보족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어떤 것. 그러나 너무 소소해서 누군가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 그 책은 이념이 사라진 시대의 젊은이들이 무엇과 싸우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녹음에는 히요와 봄눈별이 게스트로 나왔다. 히요가 ‘친구들’이라 부르던 다방을 오가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공개 녹음을 듣고 책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그 ‘친구들’ 중 하나였던 건형 씨가 녹음 시간보다 훨씬 일찍 다방에 와서 그림을 그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는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노동일을 한다고 했다.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던 걸까.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다방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건형 씨는 자신의 일터와 거리가 먼 이곳까지 주말 시간을 내어 올 만큼 다방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가 보여준 그의 그림일기 속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들, 일상의 편린들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나의 모습도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최근에 이처럼 성실한 기록자였던 그의 그림일기들이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을 보았다. 먼 곳에 있고 오랜 시간 연락이 닿은 적 없지만 무척 기쁜 마음이 들었다.) 


 다음 해였나 또 히요의 초대로 생각다방에서 네시이십분 라디오 워크숍을 열었다. 초록색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문을 열려 있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던 그 집의 고요를 기억한다.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었을 때, 기척만 남아 있던 오후의 적막을 기억한다. 히요는 그날 다방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아파서 갑자기 동물병원에 가고 있다고, 그런데 문을 열어 놓았으니 잠깐 잠이라고 자고 있어요, 라고 했다. 나를 따라 함께 온 친구 고운은 이곳이 처음인데 처음 온 사람에게 잠이라도 자고 있으라니. 집 안에는 심지어 텐트가 하나 있었다. (글로 쓰려니 이상한데 실제로도 무척 이상했다.) 나는 고운에게 히요가 잠이라도 자고 있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운은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면서도 그렇게 했다. 


 한참 후 히요가 도착했다. 잘 왔는가, 하는 무심한 그녀의 인사를 들으면서 나는 마치 우리가 오래전부터 거기 함께 살았던 사람인 듯 느꼈다. 


 그녀는 늘 그랬다. 잘 왔는가. 밥은 먹었는가. 어디 다녀왔는가. 이제 어디로 가는가. 또 봅시다. 분명 나보다 나이 어린데 만나면 왠지 한참은 언니 같고 어른 같은 태도로. 나이 많고 수염도 많은 그 집 고양이 같은 말법으로 내게 말을 했다. 


 히요는 우리에게 밥은 먹었는가, 하고 물었다. 우리는 그녀가 해주는 비빔국수를 먹었다. 부엌에 있는 재료는 20인 분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걸 오늘 다 하는 거예요? 물었을 때, 그녀가 또 무심히 답했다. 친구들이 오니까.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정주부로 한 사람을 위한 음식을 하는 것보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나눌 음식을 하는 쪽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 쉴 곳이 필요한 작업자에게 방 한 칸을 내어줄 수 있게 집을 짓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 그래서 내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 


 대연동 재개발로 공간이 칠산동으로 터를 옮겼을 때, 나는 또 그곳에 갔다. 달동네 같았던 칠산동 어느 버스 정류장에서 히요와 통화를 하며 내리막길을 걸어가던 겨울을 기억한다. 히요는 우유가 없어. 우유 좀 부탁해요, 하고 말했다. 나는 슈퍼에서 큰 우유를 사서 걸어가면서 같이 사는 사람에게 부탁하듯 서울에서 오는 사람에게 이렇듯 당연히 우유를 사오라는 것도, 우유를 사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우유를 샀다. 거기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 무언가를 하나씩 사갖고 와서 그 자리에 모였다. 모여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곤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날은 휴가 나온 군인 청년이 그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다방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개의하지 않고 마루 한 구석에서 마치 겨울잠 자는 사람처럼 잠을 잤다. 그가 곤히 잠든 사이, 히요에게 물었다. 저 친구는 휴가를 여기서 다 쓰는 거예요? 그녀는 답했다. 언제부터 휴가만 나오면 다방에 와서 저렇게 잠을 자더라고. 그가 잠깐 깨었을 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휴가를 나왔는데 집으로 가고 싶지 않고 이곳으로 오고 싶었다고 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일도 딱히 떠오르지 않고 이곳으로 오고 싶었다고 했다. 저녁이 오자 그는 잠에서 깨어나 인사를 하고는 조용히 떠나갔다. 


 칠산동 생각다방이 정리되고, 히요를 중앙동에서 만났다. 중앙동에 얻은 그녀의 작업실은 구도심의 오래된 건물 3층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레지던시 공간이자 거의 혼자 쓰는 공간이었다. 히요가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예전 생각다방에 있던 고양이 두 마리만이 놀고 있었다. 나는 생각다방의 행방을 더 묻지 않았다. 제작년 그런 그녀와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마츠모토 하지메 씨를 만나고 그가 주관하는 축제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하루는 히요가 술에 너무 취해 업다시피 데려와 택시를 타는 일이 있었고, 다른 하루는 히요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 일이 있었다. 도쿄 외곽의 조용한 동네 쿠니다치에서의 일이었다. 그날 우리는 지하 술집에 떠들썩하게 모인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조용한 밤거리를 걸었다. 시가지를 피해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다시 엇비슷한 골목들을 지나며 이야기를 하다가 히요는 눈물을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히요를 안아주었다. 그처럼 큰 손으로 음식을 하고, 공간을 만들어가던 사람에게도 그만의 고충이 있음을 새삼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만들어가길 바랐다. 그런데 언제나 사람들과 시공을 나누던 그녀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침잠하는 일에 또 다른 힘듦이 있는 듯했다. 생각다방 공간이 없어진다 해도 그곳을 오갔던 사람들 기억 속에 생각다방이 실재하듯이, 그 이상으로 그녀 몸과 마음에 생각다방은 하나의 ‘부재’로서 자리하고 있었고 그녀는 어떻게 그것을 채울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작년 12월 부산에서 본 히요가 전보다 밝은 모습이기에, 얼마 뒤 전화에서 다시 여러 사람들과 축제 만드는 일을 시작했단 이야기를 꺼내기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히요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다시 찾은 것 같아서. 한편으론 자기 안에 살아 있었던 생각다방을 비로소 그곳에서 열어 보인 것 같아서. 


 언젠가 그녀가 생각다방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녀는 상대에게 열쇠는 있지? 하고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의아해 하던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다방 ‘친구들’ 중에 열쇠를 가진 사람이 스무 사람은 될 거라고. 그녀는 이 공간이 사라지더라도 저 문만은 가져가고 싶다며 생각다방의 문을 가리켰다. 스무 사람이 열쇠를 가진 문, 수백 사람이 열쇠 없이도 드나들던 그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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