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조건형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현정씨에게 전화가 왔다. 무더위에 안부를 전하며 생각다방 산책극장 글을 써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작년에 내가 현정씨처럼 생각다방 산책극장 친구들의 글을 모아서 책을 내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받아두었던 7명의 글을 현정씨에게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예전에 받아두었던 메일을 긁어서 한글에 붙여넣기를 하며 그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그렇게 긁어서 현정씨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니 나도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대해서 짧게 적어보고 싶었다. 왜냐면 내 삶에 있어서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영향
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내 삶에 크게 영향을 준 두 가지가 있다면, 지금의 아내인 짝지를 만나 것이 무엇보다 첫 번째이고, 그 다음이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라는 공간과 거기서 만난 친구들이다. 물론, 그 공간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지금에도 여전히 자주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 살지만 서로 연락이 없는 친구도 있고, 멀리 있어서 한 번씩 어떻게 지내나 궁금한 친구도 있다. 서로의 기질이 달라서 그때는 자주 만났지만, 나와 다른 기질이라 지금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도 드물게 있다.
나는 2017년에 생산직 회사를 다니다가 다쳐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CT를 찍었는데, 내 머리에 뇌수막종이 있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그 뇌수막종 주변을 딱딱한 것이 둘러싸고 있어서 괜찮은 것 같기는 하다. 6개월 뒤에 CT를 찍어 사진을 비교했는데, 자라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1년 뒤에 다시 찍어보기로 했다. 내 아내는 건강검진을 했는데, 바이러스성 간경화 라는 진단을 받았다. 간이 어느 정도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약을 먹고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무리하지 않고 잘 쉬어주어야 한다. 간이 더 좋아지진 않고 나빠지지 않게 관리를 해야할 뿐이다. 올해로 42살, 48살인 40대 부부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프리랜서 일상드로잉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수입은 들쑥 날쑥이지만,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는 부부라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살면 일상드로잉 작가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겨레에 연재도 6개월 간 했고, 그 덕에 올 8월에는 짝지와 나의 공저인 드로잉이 많이 담긴 책이 나온다. 생각다방에서 친구들의 요청에 의해 6주 과정(?)의 드로잉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첫 드로잉 수업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다방의 경험은 무언가 어설프더라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어설프면 어설픈대로 계속 해보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가지만, 종종 어떤 한계, 부족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그런 부족함을 가진 작가로 그걸 받아들이고, 부족한 부분은 조금씩 노력하면서 멀게 길게 보고 그림작업을 하면 된다고 자위하곤 한다. 그게 다 생각다방의 영향이 아닐까. 나는 우울증과 무기력 때문에 삶에 대해서 늘 자신이 없고 회의적 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종종 우울증과 무기력 때문에 많이 힘들다. 우울증 약도 먹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독일의 버트 헬링거가 창시한 가족세우기 트레이닝 과정을 공부삼아 서울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런 부족함을 가진 연약함을 가진 나로써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게 생각다방과 짝지의 영향이 크다. 삶이라는게 혼자 살아지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같이 살아야 되고 소통하고 관계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하고 위로하고 재미있는 것들 하며 살아가는게 참 좋다.
작년에 생각다방 친구들에게 스물명 넘게 전화를 해서 글을 써줄 수 있냐고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친구들의 글은 많이 모이지 않았다. 7명이 글을 보내주었다. 생각다방 시절의 마인드로 그냥 자신의 단상을 적어주면 되는데…그게 어려웠나 보다. 혹은 원고 마감을 독촉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모인 글들이 좀 많았다면 나도 무언가 책으로 엮어보려고 했을텐데, 반응이 시원찮아서 그냥 메일에 묶혀 두고 있었다. 그런데, 현정씨가 지원금을 받아서 지금 책 작업을 하고 있고 그래서 그녀에게 작년에 받았던 7명의 글을 메일을 긁어서 보내주었다. 그 글들을 다시 읽다보니까 나도 글을 쓰고 싶었다. 나는 과거를 추억하는 건 별로 관심이 없다. 그때가 좋았지 하며 애상에 빠지는 건 관심이 없다. 다만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에 대해서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클 뿐이다.
우리는 그때 그렇게 모일 수 있는 여건, 나이, 상황에서 만났을 뿐이다. 그때가 그리워서 생각다방 비슷한 것을 또 만든다고 해도 그 때 만큼 그 공간을 자주 찾지는 못할 것이다. 각자의 일상이 있고, 관심사가 생겼고, 직업이 생겼고,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있다. 현정씨는 문학의 곳간에서 가끔 만나고, 생각이 날 때 약속을 해서 만나보곤 한다. 이내씨는 페이스북으로만 소식을 보고 있을 뿐이다. 상욱씨는 지방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일정 때문에 가족에 소홀해 지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서 업종을 변경을 하려고 하던데, 어떻게 지내고 있나 궁금하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 모두 자기 삶에 충실하게, 천천히, 재미있게 살아내길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또 우연히 만나면 반가워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정씨가 기획한 이 책이 완성된다면 우리는 또 그걸 계기로 모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