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림
생각해보면 그건 우울증이었다.
대학교 2학년, 학교 갔다 오면 밤이었고 집에 오면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로 잠에 들었고 일어나 아무 말 없이 학교를 갔다. 아, ‘못 한다.’라는 얘기를 꾸준히 들으면 그렇게 된다. 그 이야기를 여러 사람 앞에서 일어나서 들으면,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친구들 앞에서 들으면, 사람들의 눈빛에서 느껴진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나는 지나치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대학교 3학년, 손이 아파왔다. 하지만 나는 실력도 없으면서 아프다고 엄살 부릴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 결과보단 칭찬을 원했다. 병이 났다. 손목, 그 하찮게 보였던 손목 중앙의 작은 뼈가 혼자 썩어가고 있었다. 썩어가던 것이 마음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휴학을 했다. 악기 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난치병이지만 그 순간 이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휴학을 한 순간부터 뭐든지 하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혀 언니가 추천해 준 곳에 일본어를 배우러 갔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이었다. 일본어를 배우기에는 다소 독특한 곳이었는데 무서울 게 없던 때라 용감하게 갔다. 그 첫 풍경을 기억한다. 오후에 갔던 다방의 부엌에서는 가을바람이 살살 불어오고 히요씨는 저녁을 못 먹었다고 처음 본 나에게 우메보시를 권하며 저녁을 드셨다. 모든 게 특이했다.
아직까지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부터 행복했다는 것이다. 공간이 주는 따스함은 낯가림도 심하고 아는 거라고는 악기와 악기하는 사람들밖에 몰랐던 나를 편안하게 해줬다. 음악을 듣고 음악을 연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눈다.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또는 그 일들을 함께하며 놀이를 만들어갔다.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공간이었다. 잘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냥 함께 하는 것, 그뿐이었다. 점점 일본어를 배운다는 것보다 ‘오늘은 누가 있을까,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다들 왔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또래들과 생활하다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내가 말실수라도 할까 봐 걱정도 많이 했다. 그래도 대화하는 게 좋았고 또 듣기만 해도 흥미로웠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흥미로운 일이었는지 몰랐고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 나는 집에 와서 수첩에 아주 짧은 자기소개서를 써보기도 했다. 나를 소개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색한 일이여서 잘하고 싶었다. 처음 생각해보던 것들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고, 다방에서 하는 활동들을 참여하고, 다방을 알수록 나는 새로운 시도를 향한 흥미로움이 생겼다.
다방에서의 실험들은 내가 또 다른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줬다. 마치 응원하는 것처럼. 사람들 때문인지 공간 그 자체 때문인지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함께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끝나갈 때쯤 다방식구들의 이사준비와 집들이를 도우면서 느낀 건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란 공간은 없어졌지만, 다행히도 아니면 당연히도 사람들은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면 다방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가끔씩 마주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을 갔을 때 다방식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사실이다. 공간이 없어졌고 모두 각자의 자리에 있지만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라는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 같은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방식구들과의 만남은 항상 두근거린다. 아직 서툴지만 다가가 인사를 한다. 이 인연들이 끊어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