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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요 Sep 20. 2023

겨울의 한 가운데

창아


실험은 실패했다.

우리의 실험실은 사라졌다.


이전보다 더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을 견딜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이제는 없으므로 남은 건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과 그 감정들을 외면하려는 의지, 다시 또 다른 삶―어쩌면 그렇게 도망쳐 나오고 싶어했던 그 삶―에 대한 애처로운 기대뿐일지도.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애처로운, 기대. 남은 것은 삶에 대한 환상.


이게 다일까?


다는 없다.


누가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마침표를 이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그저 장면과 장면 사이를 표시하는 막.


막이 내리고 다시


막이 열린다.


남은 것.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세상에 한 번 나오면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아무리 미약하고 흐릿한 것들이어도 남는다. 어쩌면 우리가 간직할만한 것은 그 미약하고 흐릿한 것들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정의내리기 이전의 그 열망들

알지 못한 채 따라가서 만나게 된 낯선 얼굴들

어색해하며 시도해보던 말, 그림, 춤, 노래

어색해하며 주고받던 유형무형의 선물들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끔 바쁘게 움직이던 손과 발


어느 날 사라져버린 한 친구는

칼리스테라는 이름의 카페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썼다

사람들이 아니라 장소가 먼저다.

거기서 사람들이 오고간다.


어느 한 순간도 다른 순간들보다

어느 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보다

빛나지 않는다.

빛나는 것은 그 장소, 그때의 시간들이다.

그 장소를 이야기하는 가지각색의 기억들.


친구는 칼리스테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공간”, “두 번 다시 갈 수 없다고 해도 그곳의 기억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얻고, 애틋하기도 한 곳”


생각다방산책극장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 시절의 우리로 돌아갈 수 없듯이.


우리는 돌이켜 그 장소를 기억할 수 있을 뿐.


그 시절의 우리로 돌아갈 수 없듯이.


많은 것을 되돌아보는 시간, 한겨울의 시간을 보내는 중에 Win-ter Hours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는 생각다방산책극장이 말해주던 것을 그대로 전해준다.



“네 모습 그대로 살아라. 그러면서도 꿈꾸는 자가 되어라” 1*


그래서, 남은 것은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가 아니라 그걸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이다.  2*




1) 『휘파람 부는 사람』, 메리 올리버,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2016, 41쪽.

2)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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