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요 Sep 20. 2023

마지막 기억 사진

고짱


 2012년 대연동의 겨울은 참 추웠다. 난방이 되지 않는, 차가운 콘크리트가 겨울의 차가움을 있는 그대로 전해 주었다. 옛날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 2층은 거실과 연결된 미닫이 문을 열면 그대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문과 거실 사이에 거실을 끼고 있는 방으로 통하는 작은 통로가 있었는데 겨울이 되었을 때 펠트천을 구해 거실 문이 있던 곳에 달아주었다. 15만원을 주고 중고나라에서 구입한 기름 난로가 그나마 온기를 채워 주었지만 콘크리트가 머금은 한겨울을 상대하긴 좀 부족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난로의 온기에 기대야만 그나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생각다방에서 2012년 12월 26일. 


 토마토와 파프리카로 물을 낸 뒤 야채를 넣어 함께 삶고 그 물에 카레 가루를 부어 카레를 만들었다. 밥을 대신해 우동을 넣어 카레우동을 만들어 팔았다. 가격은 4,000원이었다(이었던 것 같다). 생각다방 친구들이 하는 행사에 가끔씩 참여하던 손님에서 내가 온전히 준비해야 하는 주인이 되어 홍갑식당의 고짱 주간을 준비하게 되자 나는 ‘누가 이 장소에 왔으면 좋겠는지’를 떠올리게 됐다. 여기까지가 생생히 기억나는 것의 전부다. 나의 홍갑식당 주간에 누가 왔었는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나마 기억나는 사람은 3명인데, 그 중 한명은 그때의 남자친구이고, 나머지 2명은 고등학교 때의 친구이다. 왜 내가 그 친구들을 기억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생각다방을 떠올릴 때 여러 가지의 기억 중에서 나에게 남아 있는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역시 온전히 내가 주관한 것이었다. 남들에게는 기억조차 남지 않은 2012월 12월 26일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생각다방은 나에게 뭔가를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곳이었다. 그게 재밌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무용한 것이든. 무엇보다 들기와 나기가 자유롭고 편안한 곳이었다. 어떤 모임이라도 내 시간과 비용, 그리고 마음이 맞을 땐 언제든지 환영이었고 혹시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몇 개월이라도 찾지 못할 땐, 나를 기다려 주는 곳이기도 했다. 마치 삶이 내게 그래, 너는 이렇게 있는 그대로 하는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다방 입구에 있던 신발장 위에 올라가 페인트를 칠했던 것,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던 것, 함께 한 해를 마무리 했던 것, 플리마켓을 했던 것, 밀양에 가서 캠핑을 했던것, 함께 밀양을 위해 피씨를 그렸던 것, 생각다방이 대연동에서 나오기 직전에 함께 했던 눈별과 연화와의 식사. 


마지막 기억의 사진이 남아 있어 고맙다. 생각다방 산책극장.

이전 18화 삶에 충실하게, 천천히, 재미있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