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어있는 동네, 공동주거
부산에 이런 동네가 있었어? 이름을 들으면 낯설지만 위치를 설명해주면 아~거기가 칠산동이구나 한다. 복천동 고분이 집 가까이에 있었다. 신기하게도 집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어딘가 푹 파여서 오목하게 모여있는 작은 동네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이곳에 오래 살아온 연세가 있는 분들, 원룸이 모여있는 동네는 명절이 되면 휑~하기 마련인데, 여기는 명절에 가장 시끌벅적한 그런 동네. 바로 뒤에 산이 있고, 마당이 널찍하고, 작은 화단과 밑둥만 남은 무화과 나무가 한그루 있었던 주택. 혼자 살아도 함께 살아도 월세 30만원은 내야 집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이라 더 이상 원룸에 사는 건 싫어서 이곳을 선택했다.
생각다방으로 이름 붙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많은 친구들을 예전처럼 그냥 내 집으로 초대해서 놀면 되니까. 그런데 그걸 하다보니 습관처럼 다시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되었네! 같이 사는 사람도 하나 둘 늘더니 방 4개였던 이 집에 5명이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룰은 없었다. 살림의 당번을 특별히 정해 놓지도 않았다. 오늘은 귀가하는지 외박인지 확인도 없이, 오는구나 나가는구나 잘 다녀오게 잘 다녀올게. 주방이 이전에 비해 꽤 큰 편이었는데, 어느 날 엄청 무거운! 8명은 둘러앉을 수 있는 큰 식탁을 하나 얻어 왔다. 일어나는 대로 모두 주방에 모여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밥을 차려 먹고는 두 시간씩 앉아서 대화를 했다. 아침 시간은 언제나 느긋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우리들에게는 그냥 자연스러운 생활 같은 것이었다. 특별하고 신기했던 공동주거 생활은 집의 계약이 만료되는 2년간 지속되었다. 후에 보증금을 돌려 받지못해 보증금반환소송으로 법원까지 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극적으로 합의하였다. 다음부턴 계약서를 더 꼼꼼하게 써야한다는 교훈을 남겼지.
어서와 봄.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었기에 힘 빼고 맞이했다. 답을 정해두지 않은 네모 칸을 비워두고 기다렸다. 오랜만에 멜리와 점심을 함께한 은진씨는 상큼한 딸기를 들고 오셨다. 멜리는 토마토 닭고기 스튜를 만들기 시작했고, 독특하게 다방을 알게 되었다는 (제주도의 한 카페에서 발견한 책의 첫 장에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라는 이름이 써있었다고 하는데 나와 히요의 기억에는 없는 책이었다.) 지수씨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도형과 재훈은 ‘한 가지’를 정해오지 않아서 입장을 못할 뻔도 했으나! 산책을 나가서 마련해 돌아왔다. 22일에 판매할 ‘히요의 과거’ 예고편 쯤이었던 옷더미가 있었는데,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쇼핑을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우리가 입던 옷을 입었을 때 전혀 다른 옷이 되어 나가는 풍경이 재미있었다. 달방에서 다방으로 건너오신 자현씨와 혜진씨도 헌 옷의 새 주인이 되었다. 대전 산호여인숙의 부영+은덕=미지? 세 사람이 성심당의 롤케익을 들고 뉴 타운 트래인(새마을호ㅋㅋ)를 타고 이사온 다방에 처음으로 찾아왔다. 100인의 책 모으기에 대해 귀띔 해두었더니 건형씨와 (김)주영씨는 책을 챙겨와 전달했다. 주영씨가 모셔온 3볼트님(성함을 모르겠네요)은 현관 기타연주로 2부 순서를 열어 주시기도 했다. 엄마가 구사일생으로 살린 떡볶이를 들고 서영 등장, 서울에서 멜리친구들 도착. ‘야근대신 뜨개질’ 모임의 나나, 식초, 쥬이, 바라, 시로는 멜리같은 가방을 메고 멜리처럼 낯가림을 하는 듯도 했으나 멜리처럼 진귀한 사람들이었다. (강)주영씨는 건강해진 멜리를 보고 ‘왜 이렇게 작아졌어요. 좋음이 작아진 것 같아서 아쉬워요’ 라고 말했고, 우크렐레를 든 이경씨가 현관문에 들어섰을 때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눈빛도 함께 들어왔다. 어머니의 반찬을 들고 현주쌤이 오셨고, 그 반찬을 가장 그리워한 아영은 카레와 난을 직접 만들어왔다. (이후 떡볶이로 변신하기도!) 한복을 입고 장구를 들고 등장한 은수재동부부는 파격적인 스타일만으로 잔치를 채웠는데, 온갖 전들을 요리해와서 명절분위기를 더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명절을 만드는 재주가 있다. 처음 만들어 보았다는 (너무 맛있어서 체질식이고 뭐고 계속 먹었던) 사과파이를 들고 핑크로더의 원규씨와 화니씨가 오셨고, 마산 무브먼트에서 지은씨가 남편 광기씨와 함께 등장, 이후 엄청난 프로젝트팀이 탄생하게 되는데…. 낙타깡 민사장님은 게 눈 감추듯 사라졌던 육회 천엽 간 등을 들고 새벽 2시에 홀연히 나타나셨다.
2014.3.10. 어서와봄파티 후기 (이내)
나눌 수 있는 반짝반짝한 나의 한 가지
멜리- 진로상담
지수- 다이어리 공개 및 다이어리 쓰는 팁 → 건형씨 이용
이내- 노래 만들어 주기 쿠폰 + 신곡 발표
히요- 기획 길잡이 쿠폰
도형- 24시간이 모자라는 입대 전 시간과 부끄러워 한 사람에게만 보여줄 마술
재훈- 샤워실에서만 부르던 노래 대공개 (+ 즉석 퍼커션 탄생)
자현- 초상화 그려주기
혜진- 사은품 퐁퐁 나누기
서영- 검정치마 2집 들려주기
소혜- 두 명에게 5분 안마→아영 이용 + 우크렐레 자작곡 발표
나나- 5분 사주
식초- 포스트잇 그림 →이내 이용
쥬이- 캄보디아 생생한 여행정보
바라- 제주도의 텐트 이용권
시로- 영상제작 팁
부영 은덕- 설거지 및 산호여인숙 1박 숙박권 이벤트 →재동, 쥬이 당첨
미지- 농사의 팁 (그녀는 21살)
(강)주영- 컴퓨터 수리 1회 + 3개월 AS →현주 이용
이경- 우크렐레 공연 3곡 (다음에 더 준비해 오기로 함)
건형- 30분 산책 및 1대1 대화 →히요 이용
현주- 모닝콜 써어비스 →주영 이용
원규 화니- 핑크로더 1박 숙박권 이벤트 →미지 당첨
지은- 커피술 2회 제공 →현주 이용
광기- 음주가무팀에서 음주 담당
은수- 음주가무팀에서 무 담당
재동- 음주가무팀에서 가 담당
아영- 애기목소리로 이내노래 부르는 신공 보여주기
민- 거대한 존재감
방을 채운 소품과 생활도구들이 짐이 되는 날. 다음 집에서 사용하기 위해 손 때 묻은 살림살이를 버리지도 못하고 기어이 싸들고 이동하는 것이다. 고단하다. 또 한 번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사는 곳이 제법 마음에 들지만, 상황과 여건은 언제라도 바뀔 수 있으니, 나는 항상 옮겨 다닐 준비를 해야 했다. 부산에 거주 하고 9년이 다 되어간다. 어찌된 일인지, 부산시내 구를 옮겨 다니며 살 곳을 찾아가고 있다. 부산진구-남구-동래구-서구, 이제는 사하구. 또 한번 낯선 동네를 방문한다. 언제쯤 이 지난한 이동을 멈출 수 있을까? 갈수록 피곤해진다. 익숙해지려는 관계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모여 살았다. 방을 하나씩 나누어 썼고, 많은 이들이 우리가 사는 곳을 방문 할 수 있게 적당히 열어두었다. 자주 드나드는 친구들은 출입구 번호까지 알고 있을 만큼 편하게 지냈다. 즐거웠다. 2년이 흘렀고, 부딪힘 없이 굴러간 공동생활에 두려움과 예민함이 생기려 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상처가 적은 방식을 찾은 것이겠다.) 이고지고 살았던 짐들을 밤새 정리하고 싸면서, 작은 감자칼 하나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함께 쓰되 소유는 분명한 공동의 생활은 알면서 모른 체 하였던 시간을 아슬아슬 지나온 것이었다. 발끝으로 딛고 선 생활이라는 칼날을 버티기에 나는 미숙했다.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않은 사람을 참으로 미워했다. 그렇다. 마지막은 내가 정했다. 이기적이지만, 관계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 꼴을 못 견뎌서 한참을 원망했다. 무엇을 붙잡고 한참을 놓아주지 못하는 것인가? 긴 시간 고민했다. 결국 내 속에서 만났다. 견딤 없이 쿨(!)하게 이사 다닌 나였다. 계약기간 2년에 쫓겨, 내가 살았던 동네와 사람들과 단골 가게들을 당연한 듯 인사도 없이 떠나왔다. 그리운 마음에 가끔 버스를 타고 그 마을을 지날 때면 목을 쑤욱 빼고 창밖으로 보이는 같은자리 간판들을 보며 안심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애틋한 감정에 으쓱거렸다. 그게 너무 부끄러워졌다.
2017.10.30. 「이사」 <생활글쓰기모임>에서 쓴 글 (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