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바릴로체 6
마을은 여전히 깊은 밤을 덮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듯한 새벽, 부스스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한 건 우리뿐이었다. 오늘 우리는 바릴로체를 떠나 엘 칼라파테로 간다. 아침 9시 40분 비행기라,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간밤의 바퀴벌레 소동도 잊고, 분주히 씻고 짐을 쌌다. 정신없이 나가야 하는 아침이지만, 긴 하루를 시작하려면 조금이라도 아침을 먹어둬야 했기 때문이다.
얼추 짐을 다 챙겨 나오니 새벽 6시. 샤워실에서 마주친 사람이 없어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두어 명이 벌써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널찍한 주방의 모습에 잠깐 멈칫했다. 주방은 ‘ㄷ’ 자 형태로 공간이 나뉘어 있었는데, 앞쪽 공간엔 식빵과 잼, 시리얼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들이 선반 위에 놓여 있었고, 싱크대와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뒤쪽 공간으로 들어가면 똑같이 생긴 공간이 하나 더 위치해 있다. 중간에 벽이 없이 뚫려 있는 공간이라, 처음 봤을 땐 거울이 붙어 있나 착각할 정도로 꼭 닮은 공간이었다.
우리는 일단 접시를 하나씩 들고, 식빵을 하나씩 담았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식빵을 구울 수 있는 주물 그릴이 있었는데, 처음 보는 것이라 어떻게 써야 하나 싶어 우물쭈물했다. 그때, 식빵을 굽고 있던 한 여행객이 불이 올려진 그릴 자리를 내어주었다. 말없이 다정한 친절에 뜻밖의 기쁜 표정으로 식빵을 올렸다. 낯선 곳에서 낯선 여행객을 만날 때, 그것만으로도 허술한 여행의 조각들이 맞춰질 때가 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그 여행객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식빵을 굽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은 친절 덕분에, 바릴로체의 낯선 새벽에 따뜻한 식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새벽이었다.
선반 위엔 두 가지 쨈이 있었는데 하나는 라즈베리 쨈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체모를 잼이었다. 비주얼은 흡사 땅콩 잼인데 땅콩 부스러기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맛이 복불복일 수도 있다. 일단 식빵에 쨈을 반씩 발라서 가져왔다. 라즈베리 쨈은 말 그대로 라즈베리 쨈 맛이었다. 톡톡 씹히는 씨앗 알갱이도 맛있었고 많이 달지 않고 상큼한 맛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갈색 쨈은? 한 입 베어 무니 확실히 땅콩 잼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달고, 진한 풍미가 느껴졌다. 맛은 거의 캐러멜 맛인데 캐러멜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한 입 먹으면 커피가 당기고, 커피를 마시면 또 이것이 한입 당기는 마법의 맛! 대체 이건 무슨 맛이란 말인가? 떠날 시간이 가까워져 오는데 우리는 식빵 하나씩을 더 구웠다. 그리고 이번엔 갈색 쨈만 식빵 위에 그득 발랐다. 바르고 보니 언젠가 홋카이도에서 먹었던 캐러멜 토스트와 비슷한 비주얼이었다. 맛도 비슷한 것 같은데, ‘캐러멜이다!’라고 확신하기에는 다른 종류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릴로체에서 가장 뷰가 아름답다는 호스텔의 창문 앞에서 동이 터오는 눈부신 풍경을 눈앞에 두고 나는 완전히 이 잼에 몰두했다. 대체 이 잼은 무엇일까!
"이제 진짜 가야 돼."
우리를 공항까지 데려다 줄 택시가 오기로 한 시간이 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해맑이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했다. 어제 택시를 예약하면서 직원이 당부했던 말 때문이었다. 제 시간이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택시가 그냥 갈 수도 있다고. 그럼 다시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이란 얘기였다.
서둘러 짐을 챙겼다. 데스크에 방 키를 반납하고 돌아서려는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영영 그 이름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빠 잠깐만!"
문을 열고 나가는 오빠를 다급히 불러 세워두곤 직원에게 물어봤다.
"저 갈색 쨈 이름이 뭐예요?"
직원이 무어라 대답해 주었는데 처음 듣는 낯선 이름에 자꾸만 되물었다. 두어 번 곱씹어 발음해봐도 돌아서면 까먹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직원은 메모지에 갈색 쨈의 이름을 써서 내게 건네주었다.
둘쎄데레체! 갈색 쨈의 이름은 둘쎄데레체였다!
"어디서 살 수 있어요?"
"음... 마트나 슈퍼마켓 같은데. 아무데서나 많이 팔아요."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는 희소식을 듣고 ‘땡큐, 땡큐!’를 외치며 문을 나섰다.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다시 한번 꼭 맛보고 싶은 맛! 이제 이름을 알았으니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한 손엔 둘쎄데레체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소중하게 쥐고 캐리어를 끌고 긴 복도를 걸어 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엔 커다란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황금빛으로 눈부시게 쏟아졌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황금빛 아침햇살에 물들어 눈부시게 빛났다. 마치 마을 전체에 둘쎄데레체를 발라놓은 듯, 노랗고 반짝반짝거렸다.
Dulce de leche.
이것을 먹을 때마다 바릴로체의 아침이 떠오르겠지.
이제 이것은 우리를 바릴로체로 데려다주는 황금티켓이 될 것이다.
Dulce de leche
둘쎄데레체
Dulce de leche는 스페인어로 '달콤한 우유'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 전통 디저트로, 아르헨티나 일반 가정에서 즐겨 먹는 디저트인데 집집마다 다른 맛이 난다.
우유에 설탕을 넣고 오랫동안 가열해 부드러운 캐러멜 상태로 만드는데, 이때 풍부한 맛과 갈색을 띤다. 우유에 있는 대부분의 수분이 증발할 때까지 오랫동안 졸이는 것이 특징인데, 일반적으로 다 만들어지면 처음 넣은 우유 양의 6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한다.
때때로 가당연유 캔을 개봉하지 않고 2~3시간 (압력솥에서는 30~45분) 동안 끓여서 만들기도 한다. 냄비를 완전히 끓이면 캔이 과열되어 폭발하니 주의할 것!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