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바릴로체 4
내가 소고기를 사랑하기 시작한 건 엄마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라고 한다. 원래 그다지 소고기를 좋아한 적이 없었던 엄마는, 이상하게 내가 생기고 나서부터 소고기만 보면 먹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밥상엔 소고기 소금구이가 종종 올라갔었는데, 엄마는 그 소고기를 구울 때마다 어찌나 먹고 싶던지, 할아버지가 식사를 다 하시고 나면 밥상에 소고기가 남았는지 안 남았는지부터 보았다고 한다. 소고기 몇 점이 남은 날에는 얼른 밥상을 가지고 나와 쭈그려 앉은 채로 소고기를 날름 집어먹었는데 ‘그게 어찌나 꿀맛이던지’하며 엄마는 여태 감탄을 하신다.
하루는 엄마가 할아버지 밥상에 올라갈 고기를 굽다가 너무너무 먹고 싶은 나머지, 할머니 몰래 고기를 조금 덜어 옷장에 숨겨두었다. 그리곤 아무도 몰래 옷장 속에서 소고기를 꺼내 혼자 몰래 먹었던 그 소고기 맛은 절대 잊히지가 않는다고 했다. 나를 낳고 나서는 똑같은 소고기를 먹어도 그때 그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엄마가 나를 가졌던 그 시절에는 아무리 먹고 싶은 게 있더라도 그걸 시부모님께 말씀드리기란 참 쉽지 않던 시절이라, 나는 그때의 엄마를 생각할 때면 늘 눈이 시큰해진다. 엄마는 소고기가 몇 점 남아서 나오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할아버지가 알고 일부러 남겨두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절 할아버지의 배려와 애정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본 할아버지의 밥상에도 늘 소고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태어나고 서너 살이 된 무렵에도 할아버지의 밥상엔 여전히 소고기 소금구이가 올라갔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옆에 조그만 내가 따라 앉았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지만 아직도 할아버지의 밥상이 그대로 기억이 난다. 소고기는 밥상의 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밥 한 숟갈을 뜨고는 ‘고기, 고기’하고 말했고, 그럼 할아버지는 내 숟가락 위에 고기 한 점을 올려주셨다. 엄마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할아버지 밥상 옆에 딱 붙어 앉아서 고기를 달라고 하는 내가 부끄러워서, 그만 먹고 나오라고 내게 여러 번 손짓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래도록 할아버지의 소고기를 먹고 자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더 이상 밥상에 소고기 소금구이가 올라오지 않았다. 식구들 중 아무도 소고기 소금구이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대학교를 졸업했고, 취업과 결혼을 했다. 소고기를 내가 내 돈 주고 사 먹는 나이가 되어 비싸고 좋은 소고기도 먹어봤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봐도 이상하게 할아버지 밥상 위에 올라갔던 소고기 소금구이의 맛처럼 맛있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 나를,
아르헨티나에 가기 전부터 흥분시킨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르헨티나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싸다’는 사실이었다.
아르헨티나에 가면 꼭 ‘아사도’를 먹어 봐.
특히 바릴로체에서 먹은 아사도가 진짜 맛있었어.
10년 전에 아르헨티나에 다녀온 친구 뽐이 내게 말했다. 아사도란, 소갈비구이를 말하는데 숯불에 오랫동안 구운 아르헨티나 전통 음식이었다. 숯불에 오래 구운 소갈비라니! 그냥 구워 먹어도 맛있는 갈빗살을 타닥타닥 은근하게 타오르는 숯불 위에서, 뼈째 붙어 있는 통 갈빗살을 서너 시간쯤 오래 구워 내는 것이다. 그럼 겉은 바짝 익어 바삭한 식감을 내고, 지방층이 노릇하게 구워져 고소한 냄새가 고루 밴다. 거기에 고기의 풍미를 한층 살려주는 숯불향이 덧입혀지면...! 크으.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하지만 이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상상하는 맛은 아사도의 맛이 아니었다는 것을.
바릴로체에 저녁이 내리고, 우리는 숙소 직원이 알려준 아사도 레스토랑으로 갔다. 구글맵을 끄고, 숙소에서 준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아갔다. 숙소가 있는 곳에서부터 네 번째 골목. 밤길이 어두워 근처를 한 바퀴 헤맨 뒤에야 레스토랑 입구를 발견했다. 우리가 입구에 다다르자, 나이가 지긋한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얼굴엔 여유로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레스토랑 내부는 생각보다 널찍하고 한가했다. 그는 우리에게 창가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낮이었으면 호수가 보였을 창밖은 까만 어둠뿐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아사도를 주문했다. 직원이 와인을 함께 마시라고 권유해 주었으나, 둘 다 와인에 빨리 취하는 타입이라 맥주를 마시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파타고니아 맥주를 추천해주었다. 맛이 좋을 거라며.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파타고니아 맥주는 파타고니아 지방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맥주의 맛은 진하고 묵직한 맛인데 쌉싸름한 맛이 적고 깔끔하고 향이 좋다. 파타고니아 맥주와의 첫 만남이 아사도와 함께였다니,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은 없을 것이다.
여담으로, 작년부터 한국에 '파타고니아' 맥주가 수입되기 시작했다. 위 사진의 맥주가 수입되는 건가 했는데 저 회사랑은 다른 모양. 수입되는 동명의 파타고니아 맥주 역시,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방에서 시작된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이다. (사진은 따로 첨부하지 않겠다. 인터넷 검색창에 '파타고니아 맥주'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것이 다 이 브랜드니까.)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마실 수 없었던 파타고니아 맥주를 우리 집 앞 편의점에서 사서 마실 수 있게 될 줄이야...! (사실 우리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파타고니아 맥주를 마실 수 없었던 건, 사진 속 브랜드의 파타고니아 맥주를 못 찾았던 것 같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브랜드의 파타고니아 맥주 샵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다고 한다. 아... 다시 가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파타고니아 맥주를 지구 반대편, 우리 집 편의점에서도 사서 마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마실 수 있는 파타고니아 맥주 브랜드가 참 멋져서 더 적어보자면,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브랜드라고 한다. 자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 가치관에 따라, 아르헨티나와 미국에서는 파타고니아 맥주 한 상자가 소비될 때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캠페인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가!!! 나는 이렇게 브랜드 가치관이 멋진 브랜드를 사랑한다. (아, 지금 내가 아르헨티나에 있었다면 한 궤짝을 들이키는 건데! 아쉽다.)
주문을 하고 우리는 아이처럼 설렜다. 대체 어떤 맛일까, 얼마나 맛있을까, 정말 맛있을까?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얼마 뒤, 우리 테이블 위에 아주 묵직한 도마가 올라왔다. 도마 위엔 아주아주 잘 익은 아사도가 가득 올려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고루 익은 듯 통나무 빛깔로 윤기가 좌르르르르 흐르는 갈빗살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와아- 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도 아주 적절했다. 고소한 스모키 향이 향기롭게 피어올랐다. 참을 수 없는 식욕에 이성의 끈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당장 고기를 한 점 크게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입 안의 모든 감각을 모두 곤두세우고 아사도를 씹었다.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로, 혓바닥과 입천장 사이로, 볼과 어금니 사이로, 그다음은 목구멍으로 꿀-떡, 사라졌다. 기가 막혔다. 굽기, 식감, 맛, 향, 어느 것 하나 깨지는 밸런스가 하나도 없었다. 최고의 소 갈빗살이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화가 났다.
"아, 이거 내일은 못 먹잖아!"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먹고 싶었다. 올드보이의 최민식처럼 매일매일 아사도만 먹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릴로체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밤이었고, 내일 밤에 우린 다시 이 레스토랑에 오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 다신 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사람이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마지막 한 점에 그만 배가 다 차 버렸다. 아주 배불러서 기분 좋은, 더 먹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식사였다.
"나 아사도 또 먹을 거야!"
"나도!"
"엘 칼라파테에서도 먹자! 우수아이아에서도 먹자!"
"또 먹자!"
애들처럼 기분이 좋아져서는 폴짝폴짝 뛰었다.
남은 날들도 이렇게 맛있는 아사도를 먹을 수 있을까? 다른 도시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아사도를 팔겠지?
앞날을 알 수가 없어 행복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