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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Jul 25. 2021

빙하가 무너질 때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 3



나무 사이로 보이는 모레노 빙하


  엘 칼라파테에서 출발한 투어 버스는 한 시간쯤 달려 로스 글라시아레스(Los Glacieres) 국립공원에 다 와가고 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거대하고 푸른 빙벽이 서서히 가까워오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보트 투어 매표소 입구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투어버스가 마지막 버스여서 보트 투어 역시 마지막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혹시나 매진될까 봐 얼른 예매를 하고 보트에 올랐다.



보트 투어 선착장
보트를 타러 가는 길
1층 객실에서 의자에 앉아 볼 수 있다
하지만 2층 갑판으로 올라가서 봐야지!
높이 60m의 빙벽. 대략 아파트 20층 크기의 높이다.
모레노 빙하는 안데스 산맥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온다
떨어져 나온 빙하 조각


  보트를 타고 호수를 돌다 떨어져 나온 빙하 조각에 가까이 다가갔다. 빙하의 겉은 흔히 표현하는 '투명에 가까운 블루'였는데 빙하의 속은 이렇게 짙고 짙은 파랑이었다니. 빙하 심연의 오묘한 빛깔에 심취해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으로는  빛깔이 미처  표현이  된다.  빛깔을 명명된 색깔의 이름에서 찾으라면 터쿼이즈 블루가 저런 색일까.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모레노 빙하는 지구에서 세 번째로 큰 파타고니아 빙원의 일부이다.

  모레노 빙하는 호수와 맞닿아 있는데, 높이 60m에, 폭이 5k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빙벽은 눈부시게 찬란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시리도록 푸르다는 색깔이 어떤 색깔인지 눈으로 볼 수 있다. 이 빙하가 아름다운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빙하가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빙하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레노 빙하는 매일 2m씩 아르헨티나 호수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매년 심화되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페리노 빙하는 계속해서 녹고 있다. 지금의 속도로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크기가 거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와 맞먹는 이 거대한 빙하가 반세기도 안 돼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빙하가 녹아서 붕괴될 때는 보통 빌딩 한 채 크기만 한 빙하가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가 갔던 날에도, 그렇게 빙하가 사라졌다.


 

산책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하늘과 빙하와 호수


하늘이 맑았다면 아르헨티나 국기를 그대로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늘-빙하-호수의 색으로 그려진 아르헨티나 국기.

바로 이 모습이 아니었을까.


빙하가 녹으면 이런 색이구나. 호수의 물빛은 훔쳐오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부터 뾰족뾰족 내려오고 있는 빙하들. 드넓은 빙하 벌판.
이곳에서 빙하가 무너져내리며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빙하 색깔 진짜 예쁘다... 진짜 신비로운 색깔이야!"

"캔디바 색깔이랑 똑같지 않아?

"왠지 빙하에서 소다 맛 날 것 같아."


말도 안 되게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걸었다.

그러다가 내가 ‘빙하나 봐’라고 말하고

오빠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빙하가 무너졌다.

빙하가 무너지면서 내는 소리도 들었다.

사람들이 천둥소리 같은 게 난다고 했는데

실제로 들으니 어떤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빙하가 무너지고, 조금 있으니

잔잔했던 호숫가에 파도가 쳤다.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여행 오기 전에 구글링 했던 사진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되게
말도 안 되는 풍경이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 창밖 뷰가 무려 빙하 뷰.
안녕, 모레노!



  모레노 빙하를 뒤로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떤 이는 모레노 빙하를 보고 빙하에 푹 빠져 4일째 매일 이곳에 들러 빙하만 보고 있었다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떠나야 하는데, 하면서도 다시 모레노 빙하를 보러 오고 있었다고 하던데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정말 이대로 반세기가 지나면 모레노 빙하는 사라지고 말게 될까. 이 푸르고 신비로운 얼음 성벽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걸까. 이것을 지키려면, 반세기 후에도 모레노 빙하를 볼 수 있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 이 빙하보다 더 중요하기에 우리는 지구를 망가뜨리고 있는 걸까.


  아름다워서 슬퍼지는 뒷걸음이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Adios!



모레노 빙하가 무너질 때 나는 소리가 궁금하다면, 이곳의 동영상 3:00부터 보면 나온다.
여러 동영상들을 검색해봤는데, 이 동영상 속의 소리가 가장 잘 녹음되어 있어서 이것을 첨부한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1670&docId=2443993&categoryId=51672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EBS (2010.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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