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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작가 Aug 17. 2021

악마의 목구멍에서 들린 악마의 속삭임

아르헨티나 이구아수 폭포




빽빽한 밀림

거대한 나무들이 빈틈없이 땅을 뒤덮고 있는 곳

숲 위로 불시착하게 되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에 마음이 기울던 그때


비행기는 활주로에 사뿐, 내려앉았다.





이구아수 폭포 공항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이곳.

나이아가라, 빅토리아, 그리고 아구아수.

악마의 목구멍으로 더 유명한 이곳.


우리는 이구아수 폭포에 도착했다.






  이구아수 공항에 내린 시간은 1시 5분. 지체 없이 택시를 타고 국립공원 입구로 향했다. 이구아수에서 1박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서 다음 날 아침부터 일정을 시작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우리의 이구아수 일정은 ‘당일치기’였다.


  이과수 국립공원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거대한 국립공원이다. 브라질 쪽 국립공원을 '포스 두 이구아수 국립공원'이라고 하고, 아르헨티나 쪽 국립공원을 '푸에르토 이구아수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가며 양쪽의 이구아수 국립공원을 모두 가보는 데는 단연, '악마의 목구멍' 때문이다. 포스 두 이구아수 국립공원에서는 이구아수 폭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푸에르토 이구아수 국립공원에서는 악마의 목구멍 코 앞까지 직접 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이구아수 국립공원 일정만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2박 3일로 잡는데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행기로 편도 2시간 거리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를 '당일치기'로 잡은 것이다. (거의 뭐 비행기 타고 도쿄 가서 라멘 먹고 오는 수준이었다. 와우.) 


브라질 포스 두 이구아수 국립공원에서 바라본 이구아수 폭포 풍경 / 아르헨티나 푸에르토 아구아수 국립공원에서 본 악마의 목구멍 *이미지출처: Unsplash



  포스 두 이구아수 국립공원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푸에르토 이구아수 국립공원만 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오전 11시 비행기를 타고 1시에 이구아수 공항 도착. 아르헨티나 쪽 아구아수 국립공원을 폐장 시간인 오후 6시까지 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재빠르게 돌아보고, 다시 8시 30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살인적인 스케줄을 짰느냐 하면, 우리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단 3일뿐이었다. 이구아수에서 하루를 보내고, 남은 이틀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즐기기로 했다. 그동안 아르헨티나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느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구아수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알아볼 시간도, 기다릴 시간도 없이 바로 택시를 탔다. 왕복으로 600페소. 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다른 도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긴 했지만, 국립공원 안에 들어가면 나가는 택시를 잡기가 힘들 거라고, 그곳에선 핸드폰도 안 돼서 우버를 부를 수도 없다는 말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타고 말았다. 천 원, 이천 원 아끼려다 국립공원에서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다. 우수아이아와는 달리 후텁지근한 바람이 온몸을 에워쌌다. 택시 문을 닫으니 에어컨 바람이 기분 좋게 나오고 있었다. 택시는 나무 사이로 굽이진 길을 매끄럽게 달린다.


  20분쯤 달렸을까. 아구아수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커다란 원형교차로를 한 바퀴 돌아, 택시가 멈춰 섰다.


  “이따 6시에 이곳으로 다시 올게요.”


  국립공원으로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이버는 우리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나중에 숙소까지 어떻게 갈 거냐고. 우리는 다시 곧장 공항으로 갈 거라고 말했더니, 택시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그곳에선 다시 택시를 잡기 어려우니 자기가 시간이 맞춰 픽업을 오겠다고 했다. 돈보다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는 우리는 그녀의 제안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고, 그녀는 우리를 국립공원 입구에 내려주며 6시에 다시 오겠다고 하는 참이었다.


  “네... 그런데 전화번호를 알 수 있을까요?”


  “괜찮아요. 꼭 다시 올 거예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데 드라이버가 말꼬리를 자르며 하는 말.


  “어차피 여긴 핸드폰도 안 터져요.”


  핸드폰을 보니 그런 듯했다. 수신 막대기가 한 칸, 두 칸 위태롭게 깜빡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6시에 꼭 다시 올게요. 여기서 만나요.”


  드라이버가 제때 오지 않으면 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고 아구아수에서 노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진짜 그런 상황이 닥치면 드라이버의 옷자락을 붙잡고 ‘너네 집에서 재워줘, 제발...’하며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른 방도는 없었다. 드라이버의 말을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


  “구경 잘해요!”


  드라이버는 우릴 향해 짧게 손을 흔든 뒤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마치 놀이터에 애들을 두고 볼 일을 보러 가는 엄마처럼. 엄마는 꼭 오실 거야, 데리러 오신다고 했어, 애써 불안함을 누르듯 우리는 입구를 향해 뒤돌아섰다. 아구아수 폭포 국립공원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일단 보관함부터 찾아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금방 신나서 뛰어갔다. 기념품 샵에서 보관함 대여비를 지불하고 낡은 열쇠 하나를 건네받았다. 보관함 자물쇠의 열쇠였다. 보관함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관광객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오전부터 관광을 시작했을 터였다. 산책로를 걷거나 폭포 가까이 가면 물에 흠뻑 젖을 수도 있다는 말에 젖어도 빨리 마르는 블라우스를 입고 왔다. 해맑과 나는 하의만 짧은 반바지로 갈아입은 뒤 국립공원으로 입장했다. 하늘도 더없이 맑고 파아란, 좋은 날이었다.


 


 이구아수 국립공원은 총 5가지의 관광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는 단연 ‘악마의 목구멍’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는 코스다. ‘악마의 목구멍’은 이구아수 폭포 최고의 절경이다. 이구아수 폭포는 좌우 폭이 2.7km에 높이가 평균 70m 정도다. 떨어지는 물의 양은 초당 1,000톤에 달하는데, 이 물의 절반이 ‘악마의 목구멍’으로 쏟아져 내린다. 이 폭포를 1분 동안 보면 근심이 사라지고, 10분 동안 보고 있으면 인생의 온갖 시름이 잊히고, 30분 동안 보고 있으면 영혼을 뺏긴다고 하여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 어디 한 번 영혼을 빼앗겨 볼까아?”



  내가 호기로운 농담을 던졌다. 해맑은 웃을 뿐이었지만 나는 안다. 우리는 30분도 넘게 거뜬히 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이것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 전망대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1790m를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 두 번째는 국립공원 내의 트램을 타고 가는 방법이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참 좋겠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으니 서둘러 트램을 터러 가보기로 했다.





이구아수 국립공원에 사는 야생 너구리 코아티
관광객들의 간식을 훔쳐먹기로 유명하다. 손에 있는 건 물론이고 가방에 있는 것도 다 훔쳐간다고 한다.
보기엔 귀여워도 아주 공격적인 야생동물이니, 가까이 가지 말 것.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작은 기념품 샵들이 나타났다. 시선을 끄는 기념품들이 많았는데 정작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버린 건, 어디선가 나타난 너구리들이었다. 풀숲에서 나타난 너구리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몸을 낮추어 입천장과 혓바닥을 튕기며 소리를 내자, 너구리 몇 마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중 가장 용감한 녀석이 가장 가까이 다가와서는, 킁킁킁 냄새를 맡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길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들만 만나봤지, 야생 너구리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오빠도 나도 정신이 팔려 녀석들이랑 몇 분을 보냈다. 이내 우리에게 흥미를 잃은 너구리들이 쪼로록, 풀숲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툴툴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때마침 보이는 경고판. 스페인어로 적혀 있어 글씨는 읽을 수가 없었는데, 사진엔 방금 만난 너구리와 상처를 입은 사람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이거 얘네가 공격한다는 것 같지?”


  “설마... 우리한텐 공격 안 했는데.”


  “코아티... 얘네 이름이 코아티인가 본데? 얘네한테 물린 건가 봐.”


  뒤늦게 밀려드는 공포감! 국립공원에 사는 야생동물인 ‘코아티’는 관광객들의 간식을 털어가기로 유명한 모양이었다. 간식을 털어가다가 종종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니, 주의하라는 표지판이었던 것이다. 코아티 주의 표지판은 국립공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생긴 건 정말 귀엽게 생겼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마주치는 야생동물들이란 대개 '사람에게 길들여진 야생동물'이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다가갔지만, 야생에서 만나는 야생동물에게는 절대로 다가가거나 만져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 위험할뿐더러, 야생동물이 사람의 손을 타서 자칫 야생동물의 생태계를 망쳐버릴 수도 있으니, 절대로 다가가거나 만지지 말자.






  트램 타는 곳을 찾아서 조금 더 올라가 보는데, 안내데스크처럼 보이는 곳에서 국립공원 직원들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어디 가세요?”


“트램을 타러 가려고 하는데요.”


“혹시 보트 타지 않으시겠어요?”


보트 투어는 예정에 없던 것이었는데...


“보트 타고 폭포 아래로 갔다 오는 거예요. 이구아수 폭포를 밑에서 볼 수 있죠. 가는 길에 정글도 볼 수 있어요. 열대우림이 아주 멋져요!”


해맑과 나는 자꾸만 한 발자국씩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보트 투어는 총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국립공원 폐장시간은 오후 6시. 투어가 끝나도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가능하겠다 싶었다.


“보트 투어하고 악마의 목구멍도 보러 갈 수 있어요?”


“그럼요. 물론이죠!”


호기롭게 대답하는 직원.


우리는 그때 알았어야 했다.
이것이 악마의 속삭임이었음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른 채 마냥 신나기만 했던 우리는 어느새 손에 보트 투어 티켓을 들고 있었다.








  보트 투어는 보트 선착장까지 사파리 투어용으로 개조된 오픈 트럭을 타고 이동 후, 보트를 타고 폭포를 관람하고 오는 코스인데, 보트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길이 모두 정글이었다. 대략 20명 정도 탈 수 있는 트럭에 타서 선착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가 정글에 있는 나무들, 동물들에 대해서 스페인어와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다. 이 정글에서 가장 큰 나무라며 소개한 나무가 있었는데 나무의 끝이 어디쯤인지 보이지 않을 만큼 큰 나무였다.


  20분쯤 지나자 선착장 입구에 도착했다. 축축한 구명조기를 하나씩 나눠 입고, 방수팩을 하나씩 나눠주며 선글라스와 모자, 소지품들을 모두 넣으라고 했다. 폭포 밑을 통과하는 동안 잃어버릴 수도 있다며.


  “우와아!”


  소지품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보다, 이구아수 폭포를 통과한다는 말에 우리는 잔뜩 신이 났다. 호기롭게 보트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보트는 사람들을 싣고 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세계 3대 폭포, 이구아수 폭포


  강물은 생각보다 잔잔했고, 경사진 절벽을 따라 작은 물줄기들이 떨어져 내렸다. 우리는 평화롭게 아구아수 강을 유람했다. 폭포 근처까지 다가가자, 파도에 보트가 흔들리고 절벽을 흐르는 폭포 소리에 말소리가 묻혔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어떠한 말이 필요 없었다. 보트에 탄 사람들은 너도 나도 환호를 터트렸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푸른 하늘에, 하얗게 부서지는 폭포수들, 위엄 있게 솟아오른 절벽들! 환상적이었다.


  악마의 목구멍 앞까지는 위험해서 못 들어가고, 대신 그 옆에 있는 폭포로 뱃머리가 향했다. 어찌나 세게 물줄기가 떨어지는지, 하얀 포말이 절벽의 3분의 1 지점까지 피어올랐다. 악마의 목구멍은 떨어진 물줄기가 다시 원위치까지 튀어 오른다 하니, 그야말로 거대하고 힘찬 폭포다. 보트는 폭포 아래로 들어갈까 말까 애를 태웠다. 사람들의 긴장된 목소리가 터져 나올 무렵, 보트는 폭포를 향해 돌진했다. 이구아수 폭포수들이 사정없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폭포를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흥분감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보트는 다시 한번 폭포 밑으로 돌진했다. 온몸이 아구아수 폭포수로 흠뻑 젖고, 즐거운 흥분감에 큰 웃음을 터트렸다. 온몸을 적신 이구아수 물이 입속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맛 본 아구아수 물, 그 물맛은...


진짜 달콤했다.


  세상에, 폭포수가, 아니 강물이 이렇게 달달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분명 몸에 닿아 변한 맛이 아니었다. 몸에 닿아 물맛이 변한 거라면 짜야 정상인데,  물은 분명히 달았다.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 이래서 정수기 이름이 이구아수인가 착각할 정도로!


  “와, 우리가 언제 이구아수 폭포 물을 마셔보겠어?”


  “이건 진짜 대박이다!”


  보트가 선착장으로 오는 내내 즐거움이 이어졌다.


이구아수 폭포 보트 투어. 최고의 보트 투어였다!
이 폭포 밑을 보트를 타고 들어갔다 나온다. 이구아수 폭포를 온몸으로 느끼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선착장에 내려 구명조끼와 방수팩을 반납하고 다시 트럭을 타기 위해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적어도 100명쯤. 아마도 앞서 보트 투어가 끝난 사람들이 트럭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축축해진 옷을 입고 앉아 있으려니 조금 찝찝하긴 했는데, 워낙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뜨거워서 그늘에 앉아 열을 식혔다.


  생각보다 트럭이 빨리 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간. 정글을 빠져나가는 시간까지 더해 보면, 얼른 트럭을 타고 나가야 했다. 마음이 초조했다. 얼마 뒤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먼저 줄을 서서 기다렸던 사람들이 트럭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태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상황. 직원은 뒤에도 트럭이 오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앉아서 기다리지 못하고 땡볕에 서서 기다렸다. 서서 기다려야 하나, 그늘에 앉아 있어도 되나, 걱정이 될 때쯤, 트럭 두 대가 뒤이어 도착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트럭에 몰렸다. 첫 번째 트럭에 타지 못하고 우리는 두 번째 트럭에 올라탔다. 첫 번째 트럭이 출발하고 5분쯤 뒤에 우리가 탄 트럭이 출발했다.


  정글을 빠져나가는 동안, 가이드는 간간히 말을 이어갔다. 아까 본 제일 큰 나무, 이것도 아까 본 것, 들어올 때 안내했던 가이드 내용을 상기시키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길 한가운데에 트럭 한 대가 넘어져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없었다. 아마도 사람들을 태우러 진창길을 달려오다 트럭이 미끄러진 모양이었다. 이 사고 때문에 트럭이 늦어진 것이었나 보다. 뜨문뜨문 마이크를 잡던 가이드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설명했다. 몇몇 사람들이 술렁였다. 영어로 안내하는 가이드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그 말은, 트럭이 도착하는 곳이 트램 정거장이 있는 곳이라는 것 같았다.


  “거기서 트램을 탈 수 있다는 거지?”


  불안함에 해맑에게 되물었다. 해맑도 확신이 없었다. 직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엔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는 기차가 곧 마지막 차라는 것 같았다. 사람들도 계속 술렁였다.


  “그래서 탈 수 있다는 건가? 끊겼다는 건가?”


  당황하니 말이 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다시 물어보기엔 가이드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걱정하는 사이, 트럭이 멈춰 섰다. 화장실이 있는 공터 근처였다. 우리는 잽싸게 내려 뛰어갔다. 어디로 뛰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일단 뛰었다. 트램이 표시된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었는데, 아무리 뛰어도 트램 정류장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감에 휩싸여 다시 공터로 되돌아왔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 사이 다 사라지고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직원 한 명이 빗자루를 들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직원을 불러 세워, 트램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물었다. 직원이 가리키는 방향은 우리가 뛰어 내려갔던 곳이었다. 얼마나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5분쯤 걸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전보다 더 빨리 그 길을 뛰어 내려갔다.



이구아수 국립공원 트램 정거장


  한참을 뛰어내려 간 것 같았다.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곳에 트램 정류장이 나타났다.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아마도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겠지? 일말의 희망을 가진 채 직원에게 달려갔다.


  “악마의 목구멍까지 가나요?”


  “그건 끝났어요.”


  “여기 6시까지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올라가는 건 더 일찍 끊기죠. 여기선 4시가 마지막 트램이에요.”


  시계를 보니 4시 5분.

  5분 전에 마지막 트램이 떠난 것이다!


  운이 좋았다면, 아니 거기서 트럭만 빨리 왔으면, 첫 번째 트럭을 타고 나왔으면, 하다못해 두 번째 트럭을 타고 나왔으면, 우리가 길을 잃지 않고 바로 뛰었으면, 어쩌면 악마의 목구멍까지 올라가는 트램을 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간발의 차로, 5분이 늦어 트램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럼 악마의 목구멍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없어요.”


  직원은 단호했다. 아니, 뭐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다거나, 어디로 가면 코빼기 정돈 볼 수 있다거나, 그런 거 없이 안된다고 했다. 허탈한 마음에 자꾸만 되물었다. 진짜 끝이냐고. 직원은 내가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지,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올라가는 건 끝났다고.
내려가는 트램이 30분 뒤에 올 거라고.


“그걸 타면 어디로 가는데요?”


혹시나 더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물어봤다.


“입구.”


우리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부서졌다. 직원은 이제 좀 성가신 모양이었다.



5분이 늦어, 악마의 목구멍을 보지 못하다니...



  “어쩔 수 없다. 앉아서 좀 쉬자.”


  해맑이 내 팔을 잡고 말했다. 갑자기 보트 투어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분명히 보트 투어도 하고, 악마의 목구멍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트럭이 전복되어 길이 막힐 줄, 그때의 그가 알았겠는가. 나는 모든 전의를 잃은 사람처럼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간은 아직도 4시 15분. 폐장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입구로 가는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니... 슬펐다.


  “뭐 좀 먹을래?”


  정류장에는 조그만 카페테리어가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유리 진열장 안에는 엠빠나다 4종류가 있었다. 각자 하나씩을 사 들고 나와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입맛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 엠빠나다가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입속으로 사라졌다. 4시 40분쯤 트램이 도착했다. 악마의 목구멍에서 내려오는 트램이었다. 트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악마의 목구멍을 보고 내려오는 것이었겠지... 오후의 햇빛은 더없이 눈부시고 공원을 내려가는 트램은 더없이 아름다웠는데 자꾸만 입술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하늘은 티 없이 푸르고 구름은 거짓말처럼 뭉게뭉게 피어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 그림처럼 선명하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 영혼 좀 빼앗겨 보고 싶었는데...”


  트램은 내 영혼을 탈탈 털며 입구를 향해 내려갔다.


밀가루 빵 속에 고기나 야채를 넣고 구운 아르헨티나 전통 음식.
입구로 가는 트램이 오고야 말았다.
안녕. 작은 새야.
이렇게 한없이 맑고 좋은 날이었는데
트램은 한없이 악마의 목구멍과 멀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역에 내려 터덜터덜 입구 쪽으로 걸었다. 20분쯤 걸어야 하는 거리인데 1시간이나 남은 탓에 천천히 걸었다. 걸음이 빠른 사람들은 모두 입구로 내려가고, 뒤쳐진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내려가는 길. 그때 한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유심히 한 곳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우리를 불러 세워, 손가락으로 나무 사이를 가리켰다.


  “저기, 투칸! 보여요?”


  투칸이 뭐지? 나무 사이 어디에 있다는 거지? 투칸이 뭔지 몰라 해맑과 나의 눈동자들이 방황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잖아. 부리가 큰 새. 저기 멀리.”


  그곳에 정말 부리가 큰 새가 있었다! 세상에, 트로피카나 젤리 포장지에 그려진 새랑 똑같이 생긴 것이었다. 표지판에 그려진 새랑 똑같은 것이기도 했다. 부리가 제 몸집만큼 크고, 노랗고, 몸은 까만데, 턱 부분이 하얗고, 눈동자 주변은 노란 새. 브라질의 국조인 투칸이었다. 멀리 있어서 그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노란색 부리가 확연히 보였다. 우리가 새를 발견하자 할머니는 크게 웃었다. 투칸을 발견하게 해 준 할머니와 함께 우리는 환하게 웃었다.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는 새, 투칸. 어쩌면 악마의 목구멍을 보지 못하고 내려가는 우리를 멀리서 위로해주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며 위로했다.


  입구까지 내려오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내내 보았던 하바나 카페가 보였다. 택시 드라이버와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 40분이 남아 있는 상태. 우리는 하바나 카페에서 둘세 데 레체 프라페를 시켜서 나눠 먹었다. 온몸이 짜릿하도록 달고 시원한 맛이었다.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러 날아온 투칸.  고마워. *이미지출처: Unsplash
이구아수 국립공원 내 투칸 안내판





세계 7대 자연경관, 이구아수 폭포



  락커 룸에서 소지품을 챙겨, 택시에서 내렸던 장소에 온 시간이 5시 50분. 입구 앞에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탔던 택시 드라이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르르 버스에 타거나, 예약했던 차들을 타고 한 두 팀씩 떠났다. 우리는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초조했다. 시간은 아직 6시가 안 됐는데도, 혹시나 안 오면 어떡하나, 비행기를 못 타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1분 단위로 불안했다. 1시간 같은 10분이 흘러 어느덧 정각 6시. 하지만 택시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까 전화번호를  받아 둘 걸. 다른 택시를 불러야 하나,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할 무렵이 됐을 때, 우리가 탔던 은색 택시가 회전교차로에 진입했다. 눈에 슬로우 모션이 걸렸다. 불안해하다 감격스러운 마음에, 택시 드라이버를 격하게 반겼다.


  “우린 당신이 안 오는 줄 알았어요.”


  그녀가 시계를 보았다. 아직 정각 6시였다. 드라이버가 웃으며 말했다.


  “약속했잖아요, 6시에 온다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뭔가 모를 다정함과 안도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정각 6시에, 우리를 데리러 와 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구아수 폭포가 어땠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다니! 마음 같아서는 재잘재잘 떠들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몇 가지가 안 되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6시 30분. 비행시간까지는 2시간이 남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빠른 시간 비행기로 예약할 걸. 공항 창밖으로 석양이 속절없이 타올랐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구아수에 왔다고. 보트 투어를 하느라 악마의 목구멍은 보지도 못했다고. 아구아수 폭포에 와서 악마의 목구멍을 못 보고 가는 사람은 아마 우리 밖에 없을 거라고.


  “악마의 목구멍을 못 보고 가다니, 말도 안 돼!”


  “이구아수 폭포가 왜 이구아수 폭포인 줄 알아?”


  “왜?”


  “아쉬워서, 이구아숩!”


  해맑이 해맑은 개그를 쳤다.


  “이구아숩!!! 어쩌면 여길 다시 오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몰라. 이구아수 폭포를 당일치기로 보고 가는 사람이 어딨냐고, 하룻밤 자면서 브라질에서도 보고, 아르헨티나에서도 보고 가라고. 그러니까 아르헨티나에 다시 와야 돼, 오빠. 나랑 같이 다시 아르헨티나에 올 거야?”


  “그럼. 다시 오자.”


  아르헨티나를 떠나지도 않았는데 아르헨티나에 다시 와야 할 이유를 만드는 중이었다. 언제 다시 오게 될 수 있을지는 해맑도 나도 아무도 모른다. 언제쯤 다시 오자고 쉽게 약속할 수도 없었다. 지구 반대편까지 다시 오는 것이 좀처럼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구아숩.”


  “이구아숩!!!”


 

  악마의 목구멍으로 올라가던 길에 우연찮게 보투 투어를 권하던 직원을 만난 것도, 보트 투어를 하며 맛 본 이구아수 물 맛이 달콤했던 것도, 5분이 늦어 악마의 목구멍으로 올라가는 트램을 못 타게 된 것도,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해맑과 다시 이구아수에 오자고 약속을 하게 된 것까지가 모두 악마의 속삭임이었다면, 기꺼이 눈 감아 주리라. 이렇게 당일치기 말고, 하루하루 정성껏 더 제대로 돌아보라는 뜻으로 알고 기꺼이 다시 오리라.


  싱거운 농담으로 아쉬움을 삼키며, 우리는 이구아수 밤하늘을 날아올랐다.



이구아수 공항
이구아숩! 또 올게, 언제가 됐든 다시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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