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기온이 제법 따뜻했던 2월의 어느 날, 예약된 진료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경사가 완만한 언덕을 오르는 몇 분 동안,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긴장된 마음을 애써 달랬다. 혹여 건강이 더욱 나빠지진 않았을는지, 검사 결과에 다른 이상이 있지는 않을는지, 이어지는 걱정과 두려움은 병원에 제법 익숙한 나조차도 피해갈 수 없었다.
십여 년 전, 한 대학병원의 원무과에 입사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에게 ‘병원’은 평범한 직장임과 동시에, 생사의 경계를 매일 같이 넘나드는 엄청난 공간이었다. 최전방에는 응급실이 있었고 그곳의 하루는 길고도 짧은 날의 연속이었다. 어느 밤은 취객이 내뱉는 거친 말을 삼켜내야 했고, 또 어느 날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고자 촌각을 다퉈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드는 불씨를 끝내 되살리지 못한 날도 있었다.
남겨진 가족이 흘린 눈물로 병원 한 곳에 채워지고 있을 때, 몇 층 위의 분만실에서는 축복의 눈물이 퍼져나갔다. 그곳의 가족은 출산 소식에 안도하며 환희의 눈물을 흘렸고, 세상의 빛을 본 아기는 우렁차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생명을 축복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업무의 일부였다. 생명의 신과 죽음의 신은 여기, 병원에서 인생사를 논하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겐 커다란 전환점이 될 사건이, 여기에서만큼은 특별하지 않은,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사실이, 나는 신기하면서도 다분히 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침 7시 40분, 침대 시트를 갈고 퇴근을 준비하는 간호사의 담담한 표정에서 밤새 시끌벅적했던 응급실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궁금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의 내공이.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서른 중반에 접어든 나는, 삶의 이벤트에 한층 가까워졌고 그래서인지 병원을 드나들 때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반복, 그 속에 굳건히 자리 잡은 것, 바로 희망이었다.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곧 완치가 되어 다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나의 희망이자, 사람들의 희망 말이다.
그리고 오래전, 내가 몸담았던 곳에도 누군가가 고이 심어둔 희망의 씨앗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씨앗의 힘이 묵묵히 일상을 반복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자라나고 있었던 거였을지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서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 의료진, 환경미화원 모두가 저마다의 일상을 살아간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사람이 만드는 진짜 삶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희망과 절망이 담긴 진솔한 이야기를.
다음 진료 예약은 단풍이 예쁘게 물들 10월이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 올 때는 걱정으로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돌아가는 길은 기쁨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희망의 새싹을 품고, 또 하나의 씨앗을 묻어두고 온다. 나의 하루를 위하여,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위하여. 병원은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희망이라는 강인한 무기를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