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에 관하여 Ep. 1
나와는 어떠한 접점도 없는 '타인의 공간'이 주는 새로움을 찾아다니곤 했다.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은 가끔 떠나던 여행으로 달래어주었지만, 이마저도 고양이를 반려하고는 '1박 여행'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고양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 집사가 불안해해요, 분리 불안증은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걸려버렸다.
멀리 가지 못한다면 최대한 간편하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낯선 공간을 찾는 수 밖에는. 나의 <카페 투어>의 시발점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래지 않아 심드렁해졌는데, 제각각 '특이'한 곳은 많았으나 '특별'한 곳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기자기하거나, 자연 친화적이거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거나, 공주 놀이에 적합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는 등 한 번쯤은 가볼 만했지만, 다시 찾고 싶다는 여운을 남기기엔 부족했다. 분명 새로운 카페임에도 '여기도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됐을 때, 나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타인의 공간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 어느 곳보다도 여기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스타 감성도,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봄이 채 다가오지 않은 2월의 어느 늦은 겨울이었다. 새싹이 돋아나기 전, 아직은 도시가 푸른 빛보다는 회색빛이 더욱 강했던 우중충했던 날.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다!
2층의 양옥 주택을 카페로 개조하였는데 덕분에 외관은 어릴 때 많이 보던 집처럼 친숙했다. 세련된 멋은 없었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공간을 이루고 있는 주된 소재는 나무와 천, 그리고 종이. 이 세 가지를 조화롭게 빚어내는 뛰어난 기술력은 카페가 품고 있는 '이야기'였다. 카페 주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놓은 공간에,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잔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내부는 몇 개의 주제로 구분되어 있었고, 그곳에 적힌 글귀들과 사진들을 보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물건들로만 갖춰진 공간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게 해주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느끼는 낯선 평온함이었다.
아주 오래전, 한 통신사 광고였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가 떠올랐다. 바람 소리와 발소리만 들리던 대나무숲을 깨운 휴대전화 벨 소리, 그리고 한석규 배우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주던 문장.
그 시절엔 잠시 꺼둘 것이 많지 않았었는데 언젠가부터 세상은 내가 조용히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세상의 모든 소식과 연결되어 있으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것만 같았다. 휴대전화, 그와 연동된 워치, 태블릿 pc까지 갖추며 나의 일상은 혼자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어졌다.
세상과 잠시 단절하기 위해서는 굳건한 의지가 필요했으나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단절을 불편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생각해 보자, 우리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끄고 몇 시간을 참아낼 수 있는가? 요즘은 항공기 안에서도 와이파이를 유료로 제공하는 마당에 땅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누적되는 피로 끝에 주어지는 휴식만큼 달콤한 게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곳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들여 끌어 올려야 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 무의미해 보이는 낙서를 끄적거리며 머릿속을 정리하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도 적어보았다.
남편이 말하길 "와이프는 심심하지 않겠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라던데. 정말 그렇네. 그림 그리기, 색감 공부하기, 글쓰기, 경제 공부하기 등등. 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은 사람이었네, 나라는 사람은. 쓰윽 쓰윽 볼펜 잉크를 흡수하며 채워지는 종이의 느낌이 좋았다. 따뜻한 햇살도 좋았다. 조용하고,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을 그 순간의 공기가 좋았다.
그들은 커피 팔고 있었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 아니 사실은 당신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냐고.
"누구도 해줄 수 없어요, 당신이 직접 해야죠. 우린 그 공간으로 당신을 초대할 뿐이랍니다."
나지막이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