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에 관하여 Ep.2
어떤 취향은 타인에게서의 전염을 시작으로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미술관을 찾는다. 전시 작품을 보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지만,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며 새로운 재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사진첩에는 작품 사진도 있었지만, 이와는 별개로 작품이 있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와 분위기를 담아낸 사진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작품을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는지, 어떤 색감을 써서 작품의 느낌을 배가시키는지, 큐레이터를 비롯한 관계자의 고민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거기에 요즘엔 음악까지 전시 일부로 활용하고 있으니 큐레이터분들의 고민이 한층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작가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작가와 업계 관계자들이 대중에게 선보일 최고를 만들어내기 위해 협업하고, 그 결과물을 가장 완벽한 상태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잘 기획된 파티에서 마음껏 즐기다 가길 바랍니다, 라는 호스트의 초대장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받은 첫 초대장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초대장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제법 중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르쳐주신 분이 계신다. 고등학생 때 미술 선생님이셨는데, 한 달에 한 번씩 꼭 해야 할 숙제를 내주셨다. 바로 미술 전시를 관람 후 감상문을 쓰라는 것. 주머니 사정이 여의찮은 점을 감안하여 인사동에 좋은 무료 전시들이 많으니 잘 이용해 보라고 하셨다.
"지금은 숙제니까 억지로 하겠지만 나중에 너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경험들이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맞다. 솔직히 고등학생이 잘 알지도 못하는 미술 전시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숙제니까 강제로 가서 대충 보고는 약간의 과장된 감정을 담아 감상문을 적어내곤 했다. 그날은 친구들과 함께 인사동 나들이하는 날이었다. 한스델리에서 밥도 먹고 쌈지길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관람한 척 대충 베껴서 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정말 정직하게 감상문을 작성했다.
그래서일까, 신기하게도 나는 그 선생님의 바람처럼 미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연히 미술 전공자만큼은 아니었지만 대학교에서는 교양수업으로 한국미술사, 서양미술사를 선택해서 들었고 유럽 여행을 떠나서는 유명하다는 미술관은 꼭 넣었다. 한 곳에 최소 반나절 이상은 머무를 것을 철칙으로. 서양미술사 시간에 배웠던 조각상, 작품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타인의 취향에서 출발한 반강제적인 처음은, 나의 취향을 알아가는 데 단단한 초석이 되었다. 미술 선생님은 어떻게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분의 처음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그분도 누군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전시를 갈 때마다 최소 한 작품씩은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내 원픽은 너야! 하는 느낌이랄까. 나의 원픽은 전시회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때도 있고, 때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이었던 때도 있었다. 아무려면 어때, 내 느낌대로 가는 내 원픽인데!
작가의 의도와 큐레이터의 의도로 빚어진 공간. 그곳에서 나는 나만의 이유를 찾고, 내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내었으며, 나만의 큐레이팅을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모아진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나만의 큐레이션 목록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타인의 취향 속에서 내 취향 찾기, 꽤 재미있는 일이니 한번 시도해 보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