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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Aug 29. 2024

독립 서점을 찾는 이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타인의 취향에 관하여 Ep.3


취향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을 때, 타인의 취향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 어디일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낯선 이가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곳. 카페와 독립 서점. 이 두 곳이 떠올랐다. 대형서점과는 달리 동네 책방(써놓고 보니 서점이라는 단어보다 책방이라는 단어가 더 정감 있어서 좋다!!)은 오롯이 책방 주인의 취향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사실 독립 서점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많은 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갔던 곳 모두 꽤 마음에 들었었다. (독립 서점이라고는 썼지만, 굳이 그에 한정하지 않으려 한다. 동네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지역을 대표하는 서점도 포함한다. 요지는 대형서점과는 차별화를 둔 서점이다.)



첫 동네 서점은 속초의 <문우당서림>이었다. 속초 여행에서 잠깐 여유시간이 생겨 찾아보던 중, <꼭 가봐야 할 곳>에 있길래 호기심에 들렀던 곳이다. 대형서점의 느낌과 독립 서점의 느낌을 모두 갖춘 곳으로 속초를 대표하는 서점이라 불릴 만 했다. 독립 출판물을 한데 모아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저마다 밤을 새워도 못다 할 스토리 하나씩은 다들 있지 않은가?




용기 있는 자들은 그걸 잘 엮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았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우연히 그 책을 발견할 것이다. 손에 집어 든 낯선 이는 기뻐하겠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네, 나와 비슷한 점이 많네. 작가와 독자는 같은 인물이 되었다가, '친구의 친구'도 되었다가, '아는 동생'도 되어가며 그렇게 서로에게 공감받고 위로받을 것이다.

 



두 번째 서점은 부산의 <이터널저니>였다. 신간과 베스트셀러 중심의 대형서점과 달리, 이곳은 특정한 주제에 맞춰 책들을 여유롭게 진열해 놓았다. 아니 전시해 놓았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 것 같다. 책 표지가 바로 보이게끔 하여 표지의 느낌, 책 제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모든 책을 다 볼 수 없으니 직관적인 판단을 하기에도 좋았다. 왠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책을 그 순간의 느낌에 의존하여 골라보는 재미 말이다.


예쁜 책 표지만 봐도 기분이 좋다.



얼마 전부터 달리기에 관심이 생겼는데 마침 달리기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 부상을 줄이고 건강하게 달릴 수 있도록 이론적인 부분을 다룬 책, 달리기를 통해 변화한 이야기 등등으로 책들이 모여있어 편하게 읽기 좋았다.


책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시장에서 살아남는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 짧은 생을 살다가 묻힌다. 마치 매미처럼. 작가가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몇 년, 몇 달 동안 보내는 고뇌의 시간에 비해 너무 짧은 생을 살다 간다. 며칠 목청껏 울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정말 많은 책이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이터널저니는 책들의 중립지대였다. 태어난 책들과 사라질 책들로 구분되지 않는 책들이 가는 곳. 죽어가는 책에 호흡기를 씌워주고 되살려내 오래오래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해주는, 따뜻한 곳이었다. 


 

세 번째 서점은 서울에 있는 <요즘서재>다. 이곳은 독립 서점과 카페를 섞어 놓은 느낌인데 작은 공간인 만큼 책방 주인의 취향이 가득 담겨있었다. 표지에 붙어있는 수신인 불명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주인의 글을 읽고 책을 고르면 된다. 많은 독립 서점에서 이런 식으로 책방 주인의 감상과 추천 이유 등을 간단하게 적어서 운영하는 것 같다. 옆에서 그때그때 말해줄 수 없으니, 글을 통해 전하는 이유도 있을 거고, 손으로 쓴 글에서 느껴지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책방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유도 있을 테다.


카페와 독립서점을 섞어놓은 분위기. 아기자기하고 너무 예뻤다.


어디에 닿을지 모르는 나의 말에 누군가 대답을 해준다면? 시차를 두고 낯선 이와 대화하는 것은 21세기, 아직 휴대전화가 모두에게 보급되지 않았을 그 시절,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소재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영화는 꽤 흥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판타지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봤던,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니까.



사람들은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 쪽지를 남긴다. 잘 쉬고 갑니다, 책 잘 읽었어요, 또 올게요. 쪽지가 쌓여가는 만큼 책방 주인에게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생긴다. 마음이 마음으로 전해졌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그들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취향을 세상에 알리고, 함께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며, 같은 관심사로 교류한다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게 사람들이 독립 서점을 찾는 이유이며, 또 고수익이 보장되지 않음에도 책방 주인들이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누군가 친절히 남겨준 한 마디가, 때로는 큰 힘이 되어주는 것처럼.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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