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취향에 관하여 Ep.1
우리 혹시 캠핑 안 가볼래? 처음은 남편의 용돈이 투입되었다. 우리 집 경제 규칙 하나. <부부는 일정액의 용돈을 매달 받으며, 용돈의 사용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철저한 규칙에 따라 나는 남편의 첫 캠핑 도전을 말릴 수 없었다.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산으로, 강으로 여기저기 다녀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자연에서 시간 보내는 것에 대한 거부반응은 없었으니까.
남편은 나에게 제안하기 전부터 이미 캠핑을 떠날 계획을 다 세운 것 같다. 나의 허락은 진짜 허락의 의미가 아닌 '너도 동의했으니 앞으로 집에 올 많은 택배를 보고 어떠한 잔소리도 하지 말라'는 남편의 뛰어난 계략이었다. 그동안 캠핑 관련 카페와 유튜브 등을 통해 참 열정적으로 캠핑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으며, 가성비 최고의 물품들로 중국 직구 사이트를 통해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코로나가 한참 극심하던 시절, 우리 부부의 첫 캠핑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취미생활 중에 캠핑은 호불호가 아주 명확하게 구분된다. '왜 돈 주고 사서 고생하냐?'와 '그 재미에 가는 거다'라는 두 주장이 아주 팽팽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야외 활동을 주도하는 건 대부분 남편들인데, 남편들은 아내를 일단 캠핑에 입문시키기 위해서 번거로운 일을 처음엔 모두 도맡아 한단다. 편하게 있다가야 다음에 또 캠핑을 가자고 할 때 반대를 안 할 테니까. 하하하.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남편의 손에 이끌려 캠핑을 한 번 두 번 다니다 보니 캠핑의 진면모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부지런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참 아이러니하지, 캠핑을 가는 이유는 자연 속에서 멍때리기를 하기 위한 목적인데 그 멍-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캠핑 일정 앞뒤로 매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캠핑을 떠나는 과정을 간략히 풀어보면 이렇다.
캠핑을 가기 위한 준비물을 점검하고 챙긴다. 특히 전구 등의 배터리가 잘 충전되어 있는지, 버너에 쓸 가스는 넉넉한지 등등. 가스는 미리미리 여분을 잘 준비해야 하고, 화덕이 있는 곳은 물을 먹지 않고 잘 말려진 장작을 구매해야 한다. (불멍을 해야 하니까) 캠핑장에 도착해서는 텐트를 피칭하고, 집에서 싸간 용품들을 용도에 맞게 진열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텐트를 잘 접어 정리하고, 용품들을 다시 잘 넣어 집에 가져와서 설거지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캠핑에 대한 모든 일정이 완벽하게 종료가 된다.
써놓고 보니 왜 돈 주고 사서 고생을 하나, 는 입장이 십분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캠핑을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이유이지 않을까?
대부분의 캠핑장이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 곳에 있어 오감으로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풀 냄새와 나무 냄새도 좋지만 나는 특히 자연의 색감을 좋아한다. 하나의 색으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자연의 색감 말이다.
노을이 질 때는 붉은 빛과 푸른 빛이 층층이 겹쳐가며 점점 어둑해지는 밤하늘은 완전한 검은색이 아니며 미묘하게 다른 여러 색의 혼합이다. 맑은 날엔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나뭇가지의 색감이 한데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일상에서는 자연의 색보다 인위적인 색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소중하고 붙잡아두고 싶은 시간이다.
좋았던 경험 하나가 다음번 캠핑을 불러온다. 익숙한 집을 떠난 잠시 동안의 일탈은 분명 고생스럽지만, 제법 재미있고 신나는 일임은 틀림없다.
예전에 자두라는 가수가 부른 <김밥>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그 노래 속에서 두 남녀는 거의 우리 부부급으로 같은 점이 없는데 둘 다 김밥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단다. 우리 부부도 식성, 드라마 취향, 책 취향 등등 같은 취향으로 묶을 게 하나도 없는데, 캠핑만큼은 <우리의 공통된 취향>이었다.
자두에게 김밥이 있듯이, 우리에겐 캠핑이 있다. 우리는 그냥, 돈 주고 사서 고생하는 사람 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