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취향에 관하여 Ep.2
김은숙 작가님과 김은희 작가님. 이름은 한 글자 차이인데 작품의 분위기는 천지 차이다. 김은숙 작가님의 <태양의 후예> <도깨비> <시크릿가든> <미스터 션샤인> 김은희 작가님의 <킹덤> <시그널> <싸인>. 로맨스와 스릴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고루고루 소비하는 집이 있다. 바로 우리 집.
"이봐, 내 저 사람이 범인일 줄 알았다!" (혹은 내 저럴 줄 알았다!) 라는 쾌감에 가득 찬 말과 "몽글몽글한 드라마를 보니 마음이 선덕선덕 하구만!"이라는 말랑말랑한 말이 공존하는 집. 남편과 내가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드라마를 보고 나면 꼭 한마디씩 남겼고, 두 문장을 뒤바꿔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둘은 너무나도 확고하고, 자석처럼 정반대의 취향을 갖고 있으니까.
여기까지 들은 지인들은 "둘이 취향이 바뀐 게 아니냐?"라고들 한다. 아니야, 우리는 뒤바뀌지 않았다!
로맨스의 간질간질한 대사를 참아내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미제사건, 사건·사고를 다른 형사물에 타임워프가 가미된, 판타지와 스릴러 또는 미스터리가 섞인 장르였다. 시그널, 터널같이 주된 장르는 형사물이지만 곁다리 정도로 첨가된 로맨스라면 참아낼 수 있었지만 더는 어려웠다.
대놓고 나 연애합니다, 라는 로맨스 기류가 스멀스멀 풍겨오기 시작하면 참지 못하고 중도하차를 해버리곤 했다. "우리나라는 왜 모든 장르에서 로맨스가 빠지지 않는가!"를 외쳐대던 어느 날, 삼겹살 기름 빼듯 쫙쫙 빼버려 담백해진, 로맨스 없는 드라마 <비밀의 숲>을 보며 환호성을 지른 여자였다. (물론 아주 약간의, 데코레이션 수준으로 뿌려진 후추 정도의 로맨스는 있었지만 과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수준이었다)
달달한 대사와 간질간질함을 즐기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로맨스가 아니면 보지 않았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보보경심 려 같은 '대놓고 로맨스' 드라마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드라마 전개상 남녀 주인공을 가로막는 어쩔 수 없는 시련에 함께 마음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가며, 달달함과 절절함을 왔다 갔다 하며 즐기곤 했다. 수많은 로맨스를 관통하는 클리셰를 알면서도 울며 웃으며 즐거워하던 남자였다.
물론 인간사에 사랑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낯간지러운 대사들을 받아들이기엔 나의 방어력은 밑바닥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왜 주인공 남녀는 편하게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물론 극적인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악역도 적절하게 배치해 주고, 시련도 적당량 넣어주겠지만 그 모든 과정에 감정을 싣는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찾게 되는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라 형사물이었다.
정반대의 취향을 가진 사람 둘이 만나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생활한 지 9년 차에 접어들어 간다. 그 긴 세월 동안 둘은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두 남녀 간에 사랑 고백을 속삭이는 단어와 문장들, 상대방이 너무 좋아죽겠는 장면들은, 미제 사건이 어쩌고저쩌고,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단어가 줄줄이 나오는 장면들과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었다. 태생 자체가 다른 녀석들이었으니까.
그 둘이 어울릴 수 없듯이 우리 둘도 같은 드라마를 나란히 앉아 보는 일은 여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었다.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될 테니까.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두 작가님의 드라마가 편식 없이 골고루 소비될 것이다. 우리나라 특성상 내가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더 적긴 하겠지만.
함께 공유하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 집처럼 취향의 다양성도 보장되는 집도 있어야지. 취향의 존중, 기본 중의 기본이다!